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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08:31:11

바이코리아 펀드

Buy Korea Fund

1. 개요2. 흥행3. 이후4. 여담

1. 개요

한국의 펀드 상품 중 하나로 1999년 현대증권(현 KB증권)에서 출시하였으며, 그 자회사인 현대투신에서 운영하였으나 현재는 그 후신인 한화자산운용에서 "코리아 레전드 펀드"라는 이름으로 운용중이다. 신규가입은 2003년에 종료되었다.

2. 흥행


1999년~2000년을 뜨겁게 달궜던 펀드. 1999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펀드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거나 CF 한 편이라도 본 기억이 날 것이다. 당시 이익치 현대증권(현 KB증권)[1] 회장[2]이 나와서 당시 외환위기로 인해 코스피지수가 270까지 떨어졌을 때 "지금 주식을 사면 여러분 모두 부자가 됩니다. 2005년엔 코스피지수가 6000까지 갈 거에요"라고 말하면서 이 펀드를 팔았다. 특히 제2의 금모으기운동의 성격으로 애국심에 호소하는 캠페인성 CF의 파급효과가 엄청나서 바이코리아 펀드의 인기는 엄청나게 치솟는다.


특히 외국 기업 하나가 대한민국 상장기업 전체보다 시가총액이 높다는 사실을 제시한 2차 캠페인 CF가 펀드의 흥행에 큰 역할을 했다. 실제 CF를 보면 "한국 경제, 외국 기업 하나만도 못합니까?"라는 멘트를 넣었다.

광고에 나온 NTT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의 거품경제의 영향으로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였던 기업이었으며 장기불황이 시작되고 수년 후인 1999년에도 세계 3위이던 상황이었다. 당시 저런 기업을 두고 '외국 기업 하나만도 못하다'라고 한 비교는 억지인 측면도 컸지만 '외국 기업 하나만도 못한 한국 경제' 프레임은 애국 마케팅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냈다.

판매실적은 한마디로 대박 중의 상대박이었다. 54일만에 5조원을 끌어모았다. 당시 일반 직장인부터 농부, 자식 대학교 등록금을 쏟아부은 주부, 직장에서 실직하고 퇴직금을 쏟아부은 사람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대박의 꿈을 안고 밀려들었다. 그 때 유행했던 말이 "한국경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였다고 한다. #

3. 이후

그리고 1999년 코스피 지수는 저점으로부터 4배 가까이 올랐고 코스닥 지수는 6배 이상 올랐다.

그러다가 2000년 IT버블때문에 코스피 지수가 2000년 1월 1059포인트를 찍더니 하락하고 코스닥 지수는 2000년 3월 2834.40[3]를 찍은 후 520선으로 폭락했다. 당연히 이 펀드도 99년 100% 수익에서 -77%라는 엄청난 손실이 났고 단기간에 큰 수익을 낼 요량으로 펀드에 무리해서 전 재산을 쏟아넣은 사람들은 줄줄이 파산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펀드에서 돈을 빼면서 펀드 설정액은 급격히 줄게 된다. 바이코리아 펀드는 운용사인 현대투신이 정부 지원과 푸르덴셜의 인수와 함께 이름을 나폴레옹 펀드로 바꾸고 살아남았다. 정확히는 혼합형에는 ‘ 르네상스’를, 주식형에는 ‘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펀드 맨 앞에는 바이코리아의 영문 이니셜인 ‘BK’를 달았다.

이후 2001년 미국 9.11 테러 여파가 끝난 후부터 약 10여년간 한국 증시는 대호황을 맞았고, 2009년 12월 기준으로 바이코리아 펀드가 1999년 펀드 설정 기준일로부터 329%나 상승했다. 참고기사 10년 9개월 동안 330% 상승이면 매년 거의 15%씩 상승했다는 것이다.

단기에 큰 수익을 보려 하거나 단기간 급등락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장기투자를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유리하며, 거치식보다는 적립식이 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1년 7월 11일, 나폴레옹 펀드는 푸르덴셜 자산운용이 한화자산운용과 합병 이후 '코리아레전드펀드'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4. 여담



[1] 2017년에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이 합병하였다. [2] 1999-2000 현대증권 회장 역임. 이후 불법 대북송금 사건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 등에 연루돼 사법 처리되었다. [3] 2000년 당시 지수로는 283.44였다. 닷컴버블 붕괴 이후 코스닥 지수가 바닥을 기자, 2004년부터 기존의 코스닥 지수에 10배를 곱해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