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미하엘 카스트 Michael Ka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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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미하엘 마르틴 카스트 쉰델레 Michael Martín Kast Schindele |
출생 | 1924년 4월 2일 |
바이마르 공화국 바이에른 타를키르시도르프[1] | |
사망 | 2014년 5월 9일 (향년 90세) |
칠레 산티아고 수도주 부인 | |
국적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칠레|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슬하 자녀 10명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아들) |
학력 | 고졸 |
종교 | 가톨릭 |
직업 | 前 군인, 기업인 |
소속 | 나치 독일 육군 (1942~1945) |
최종 계급 | 중위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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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치 독일 소속 前 군인이자, 칠레 귀화 후에는 사업가.2. 생애
1924년 바이마르 공화국 바이에른 주 타를키르시도르프에서 분유 공장장의 아들로 태어났다.어린 시절에는 나라에서 의무적으로 징집하다 보니 히틀러 유겐트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갔었는데[2], 지내면서 점차 나치 사상에 동조하게 됐는지 본인을 비롯한 8형제 모두가 나치 독일군으로 2차대전에 참전했다. 허나 8형제 중 무려 다섯이나 전사하고 본인을 비롯한 3명만 살아남았다. 미하엘과 그 자녀들이 그렇게 자녀를 많이 가진 것도 이때 형제들을 너무 많이 잃어서 그런 듯 하다. 최종 계급은 중위.
1946년 올가 마리아 크레스첸시아(1924~2015)와 결혼하여 슬하에 자녀를 10명을 두었으나 그 중 둘은 어려서 요절했다. 일개 병사도 아닌 장교이다 보니 독일에 있으면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가족들과 같이 1950년 남미로 이주해 칠레로 정착했다.
남미에서는 소시지 공장을 운영하며 조용히 살았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은 조용히 살지 않았으며 사실상[3] 장남인 미겔 카스트(1948~1983)는 칠레 중앙은행장을 역임하다 골육종으로 요절했으며 사실상 차남인 한스는 가톨릭 사제, 사실상 3남인 크리스티안은 기업인, 사실상 4남인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는 아예 정치인으로 무려 칠레 대통령 선거 후보까지 되었다.[4]
3. 여담
프로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젊은 시절엔 상당한 미남이었다. 그러나 남미 귀화 후로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는지 사진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굉장한 다둥이로 자녀를 무려 10명이나 두었다. 아들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역시 슬하에 5남 4녀로 자녀를 무려 9명이나 두었다. 본인 역시 여자 형제는 몰라도 남자 형제는 무려 7명이나 되었다.
[1]
Thalkirchdorf
[2]
교황
베네딕토 16세 역시
히틀러 유겐트 복무 이력이 있지만 당시 독일에선 히틀러 유겐트 복무가 개개인의 선택사항이 아닌 의무사항인지라 이걸 갖고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3]
자녀 10명 중 요절한 두 자녀의 순서가 몇번째인지 알 수 없기 때문.
[4]
만약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가 칠레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그의 과거 이력이 적극 드러나 크게 불리하게 작용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오스트리아 대통령
쿠르트 발트하임은 젊은 시절 나치 장교로 복무했던 이력 탓에 몇몇 국가에서
페르소나 논 그라타 처분을 받아 입국조차 못하게 된 적 있었다. 물론 호세 본인이 아니라 아버지 미하엘의 논란이기도 하고 서양은 동아시아와 달리 연좌제 의식이 낮은 편이긴 하지만 호세 안토니오의 강경우익 사상 때문에 아버지나 아들이나 다를 것 없다는 유권자들이 많은 상태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