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진흥왕 시대에 활약한 신라의 장군. 이름의 미진(未珍)[1]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기록된 삼국시대의 지명 중 매진이(買珍伊), 무진(武珍), 미동(未冬) 등과 음운 상으로 유사한데, 수입(水入)·수입이(水入伊)라는 지명과도 비교할 수 있으며 현대어 '물-들이'에 대응되는 고대 한국어 어휘로 추정된다(최남희 2003).2. 상세
장수왕 이래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한반도 중부를[2] 551년에 공격할 때[3] 참전한 9명의 장수 중 한 명이다.[4] 이 때 점령한 10군은 한강 상류지역 강원도 및 함경도 남부 일대로 여겨진다.3. 필사본 화랑세기에서
신라의 풍월주(風月主) 박창화가 필사했다고 주장하는 화랑세기의 기록 |
||||
초대 위화랑 | ← | 2대 미진부공 미진부 | → | 3대 모랑 |
위서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서는 화랑이 창설될 때 부제(副弟, 화랑의 2인자)였다가 위화랑한테서 물려받아 2대 풍월주가 됐다거나, 원화였던 남모의 연인으로, 남모가 죽은 후 그 어떠한 여자도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법흥왕의 후궁이었던 묘도부인과 결혼하여 드라마 선덕여왕(드라마)로 유명해진 미실과 동생 미생의 아버지로 나오는 등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첫 미 자가 성씨로 보일 수있는데, 성은 아니다. 일단은 한자가 美와 未로 다르지만, 어차피 xx부라는 신라 상대 인명들이 대부분 그렇듯 미진부(未珍夫)는 신라어 고유어 음차표기일 테니 그건 상관없는 듯 하다.
[1]
당시 차자표기에서
珍은 '돌'로 읽혔다. 대표적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 지명에서 마돌현(馬突縣)과 마진(馬珍)이 대응되며, 석일본기에서도 신라의 관직명
파진간기(波珍干岐)를 '바도리간기(ハトリカンキ)'로 훈독했다.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지만 한자 진(
珍)의
상고 한어 시절 음가가 /*trən/으로 재구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죽령 이북, 고현(高峴) 이내의 10군
[3]
백제는 한강 하류를, 신라는 한강 상류로 치고 올라가 차지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이후 한강 상하류 모두 신라가 차지했고, 양국 간의 갈등이 촉발되어
관산성 전투로 이어진다.
[4]
대각간
구진,
각간 비태(比台),
잡찬
탐지(耽知)ㆍ
비서(非西),
파진찬
거칠부ㆍ서력부(西力夫)ㆍ
노부(奴夫),
대아찬
비차부,
아찬 미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