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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2 09:24:22

미륵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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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2호
익산 미륵산성
益山 彌勒山城 | Mireuksanseong Fortress
<colbgcolor=#024694><colcolor=#fff>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124-1번지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 / 면적 일곽
지정연도 1973년 6월 23일
건축시기 고조선[2], 통일신라[3]
파일:익산시의 미륵산성.jpg
<colbgcolor=#344c3c> 미륵산성

1. 개요2. 역사3. 문화재청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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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륵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124-1번지 미륵산에 위치한 산성이다.

2. 역사

고조선 시대 준왕이 이곳으로 내려와 쌓았다고 하여 기준산성이라고도 불렸고, 혹은 용화산성이라 부르기도 하였다.[4] 혹은 마한의 여러 나라 가운데, 익산 지역에서 유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나라가 쌓았다는 설도 있다.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지리지, 와유록, 익산군지 등에 산성에 대한 기록이 있다. 고려 초기 태조 후백제 신검을 쫓을 때 여기서 항복을 받았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에 따르면 둘레 3900척, 높이 8척이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미륵산성에 군창이 있었던 모양이다.

영조 14년(1738) 강후진이 쓴 '와유록(臥遊錄)'에 미륵산성이 버러졌다는 내용이 있으므로, 18세기에는 이미 성곽으로서 기능을 상실된 듯하다.

미륵산성은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다.

3. 문화재청 소개글

문화재청 소개글
전라북도 익산시 미륵산에 위치한 이 산성은 일명 ‘용화산성’으로 불리는데, 옛날에는 미륵산을 용화산이라 했기 때문이다.

고조선시대 기준왕이 이곳으로 내려와 쌓았다고 하여‘기준성’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지만, 마한의 여러 나라 중 하나가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산성도 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과 견훤을 쫓을 때 이를 토벌하여 마성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마성이 바로 이 산성이다.[5]

미륵산성은 둘레 약 1287m, 높이 2.4m이며, 정상에서 사방으로 능선을 따라 성이 만들어졌고, 그 중 하나는 물 흐르는 곳을 향하여 내려가는데 여기에는 동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에는 작은 성을 따로 쌓아 방어에 유리하게 하였으며, 성안에서는 돌화살촉, 포석환 등 기타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1] 11호 〈무장남문과 토성〉은 1991년 2월 26일 해제되고 사적 제346호로 승격했다. [2] 문헌기록 한정. [3] 고고학적인 관점에서 미륵산성은 운용시기가 최소 통일신라 이후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백제 초축설에 대한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시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조사성과로는 백제시대 유구가 발견되고 있지 않고 있다. [4] 미륵산의 옛날 명칭은 용화산이다. [5] 설명에 오류가 있는 듯한데 이때 견훤은 신검의 쿠데타로 쫓겨났다가 간신히 탈출하여 고려에 투항해 왕건과 함께 하던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