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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8-17 13:52:06

무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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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攸暨
무유기
작호 <colbgcolor=#fff,#191919>천승군왕(天乘郡王) → 정왕(定王) → 안정군왕(安定郡王) → 낙수군왕(樂壽郡王) → 초국공(楚國公)
시호 충간(忠簡)
무(武)
이름 유기(攸暨)
생몰 ? ~ 712년
부친 무회도(武懷道)
조부 무사양(武士讓)
본적 병주(幷州) 문수현(文水縣)
주군 측천무후
당중종
당예종

1. 개요2. 생애3.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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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주 시기의 외척으로 측천무후의 조카.

2. 생애

무사양의 손자로 무회도의 아들이었다. 천수 연간에 천승군왕(千乘郡王)으로 책봉되고 실봉 300호를 받았다. 무유기는 처음에 우위중랑장(右衛中郞將)을 지냈고 태평공주에게 장가를 들어 부마도위(駙馬都尉)로 제수되었다. 이후 우위장군(右衛將軍)까지 승진하고 정왕(定王)으로 진봉되었으며 실봉 300호가 더해졌다. 이후 다시 안정군왕(安定郡王)으로 책봉되었고 사례경(司禮卿),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를 역임하였으며 특진(特進)이 더해졌다.

신룡 연간 사도(司徒)로 임명되고 다시 정왕으로 책봉되었으며, 실봉이 1000호가 되었지만 실봉은 고사하고 받지 않았다. 무유기는 뒤에 낙수군왕(樂壽郡王)으로 강등되고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로 임명되었으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가 더해졌다.

710년 당륭정변으로 무연수 등이 주벌된 뒤 초국공(楚國公)으로 강등되었고, 712년에 사망하여 태위(太尉), 병주(幷州) 대도독으로 추증되고 정왕으로 추봉되어 충간(忠簡)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선천정변으로 태평공주가 주벌된 뒤 무유기의 무덤은 파헤쳐졌다.

3. 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