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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에서 90년대 중반부터 약 2년 간(정확히 말하자면, 1995년 7월부터 1997년 3월까지 만 21개월) 발행되었던 모형 전문 잡지.전설적 모형지 취미가의 유일하게 제대로 되었던 경쟁지. 이전에 취미가 외의 모형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질이 워낙 형편없었는데다 오래 가지도 못해 사실상 경쟁지 취급을 받지도 못했다. 그에 비해 우수한 인력이 모여 만든 이 '모델러2000'(이후 모델러로 약칭)은 취미가에 뒤떨어지지 않는 높은 질을 선보여 발행기간 동안 한국 모형지 판을 사실상 양강체제로 만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2. 충격적인 탄생
사실 이 잡지가 그정도의 퀄리티를 뽑으며 취미가의 아성을 넘볼 수 있었던 것은, 그 핵심인력이 전 취미가의 핵심인력이었기 때문이다!1995년 2월 경, 취미가 사내에서 어떤 분란이 발생했다. 그리고 분란은 걷잡을 수없이 확대되어 결국 취미가의 실질적 no.2이던 유승식 편집기자를 필두로 한 핵심인력 상당수가 취미가를 뛰쳐나와 버렸다. 도대체 왜 그랬는가는 지금도 미스터리. 관련인물 전부가 20년 이상이 지난 현재( )까지도 사건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고 있기 때문에, 웹을 뒤져보면 온갖 억측과 망상만이 판을 칠 뿐이다.
아무튼 이탈인력들은 당시의 PC통신 등을 통해, 자신들의 정당성 및 궐기(?)명분 그리고 이대영 취미가 편집장에 대한 강렬한 비판 등을 게재했다고 하며, 왠지 이에 호응한 독자들도 상당수 되었다 카더라. 그리고 결국 몇 달 지나 95년 7월에 '모델러 2000'이란 이름으로 새 잡지를 창간한다.
2.1. 도대체 왜?
여기에 소개하는 내용들은 순전히 인터넷에 떠도는 추측들을 종합한 것이다. 당사자들에 의해 밝혀진 진실이 아니므로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1. 이대영 편집장과 유승식 기자의 성격적 불화설 : 말 그대로 이대영 편집장이 특유의 성격[1]에 유승식씨와 기타 인력들이 못 견뎌서
2. 호비스트 갤러리 문제설 : 취미가에 실린 작품들의 전시 겸 모형점 성격으로 운영했던 호비스트 갤러리란 곳이 있었다. 근데 여기서 보따리를 이용해 모형점 업계보다 더 싸고 빠르게 물건을 취급해서, 여타 업주들이 책만 만들지 뭔 장사냐 하고 반발했다 카더라. 이에 이대영씨가 여길 걍 정리해 버렸고, 갤러리의 지분을 갖고 있던 유승식씨가 열받아 대판 싸우고 갈라섰다는 설.
3. 회계 문제설 : 발행인 조상석씨가 자금줄을 대주었으나 이대영씨와의 불화로 조상석씨가 떠나면서 경영에 문제가 생김. (조상석씨는 미국의 유명한 Squadron사에서 근무한적이 있는 밀리터리 콜렉터이자 고증전문가였다. 역시 미국거주자이고 고증관련 객원기자로 활동하던 정교남씨도 취미가에서 손을뗀다.)
이 외에도 소소한 주장들이 있으나, 당사자들이 밝히지 않는 한 모두 다 가설에 불과하다는 점을 주의 바란다. 이게 전부 진실일 수도 있고, 전부 거짓일 수도 있다.
3. 책은 어떠했나
전 취미가의 핵심인력들 답게, 책의 구성이나 기사/모형제작의 질은 흠잡을 데 없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창간 초기부터 나쁘지 않은 수준의 전문 단행본을 열심히 찍어냈으며, 모형 사진을 찍는 부분은 취미가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사진이 크고 시원했으며,[3] 화질도 또렷한 편에 이른바 얼짱각도(..)를 캐치하는 감각 등이 좋은 점수를 받을 만했다.창간 초기에는 판형이 취미가보다 훨씬 컸다. 그러다가 5호(1995년 11월호)를 기점으로 취미가와 같은 판형을 사용했다가 다시 17호(1996년 12월호)부터 옛 판형으로 복귀, 폐간될때까지 큰 판형을 유지했다.
전체적으로 취미가가 AFV 장갑차량이 강세였다면 모델러 쪽은 항공기 기사가 우수했다.[4] 기사 부분도 굴지의 이론통이던 유승식씨의 실력이 발휘되어 고증이나 오류 면에서 우수한 편이었으나, 다소 딱딱하여 글 읽는 재미가 좀 덜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모형 제작기사 면에서는.. "조립하고 어디어디 디테일 업 해주고 무슨색 뿌리고 워싱 드라이브러싱 했다." 는 식의 형식적인 서술이 대부분을 이뤘던 것 또한 약점이었다. 이는 간단히 말하면 취미가 이대영의 필력과 편집 능력이 모델러보다 낫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사진 비중이 높은 모델 전문지라도 좋은 사진과 설명만으로 재미있고 읽기 좋은 글이 되는 건 아니다.
총평하자면, 사진이나 고증/이론 기사는 볼 만하지만 전체적으로 흥미 위주 읽을거리가 많이 부족한 편이었다. 모형제작/밀리터리 강론(?)외에도 모형관련 신변잡기 등에 관심을 갖는 독자도 꽤 있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모형지는 들어가는 돈과 노력에 비해 참 돈이 안되는 책이란 점이다. 더군다나 취미가는 3~4년 걸려 도달한 레벨에, 모델러는 처음부터 그런 레벨로 시작하려고 한 상황이었으니 재정부담도 상당했을 듯. 결국 책 자체는 97년 3월호를 끝으로 소리소문없이 폐간하고 말았고, 그 해 5월 자매지인 컴뱃암즈의 모델러판으로 재창간했으나, 단 2호만 찍고 폐간되었다.
3.1. 컴뱃암즈(잡지) 창간
컴뱃 암즈 | 밀리터리 월드 |
4. 날 선 신경전
희대의 양강 체제가 성립된 후, 양 잡지가 건설적으로 경쟁해 나가며 국내 모형판의 성장에 기여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태생이 태생이라 그런가, 양강체제 시기 동안 두 잡지는 서로서로 기사에 태클을 걸며 숱한 신경전을 벌였다. 단 개중 몇몇 건은 편집장님이 나름 조용히 있는 모델러를 툭툭 건드린다는 느낌이 있었다.대표적인 걸로 모델러 시즌 2(..)인 '밀리터리 모델러'에서 '디오라마에 멋진 제목을'이란 기사를 쓴 적이 있었는데, 그 기사에 "모든 디오라마는 그걸 만든 사람이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므로 저마다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따라서 디오라마는 반드시 어떠어떠해야 한다고 강요해서도 안 되고 좋다 나쁘다는 평가를 해서도 안 된다." 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걸 두고 취미가 기사 <디오라마학>에서 편집장님은 특유의 글투로 "요즘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조금만 지각있는 사람이라면 이게 말도 안 되는 억지라는 것 쯤은 대번에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5]라고 대차게 까버렸다.[6]
그 외에도 하세가와에서 발매한 P-47 키트에 대해 모델러 2000쪽에서 형상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비판하자 그 다음달 취미가에서 편집장님이 "멀쩡하고 좋기만 한 키트"라고 정 반대의 평가를 내리고 모델러 2000 쪽을 입모델러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그 다음달에 모델러 2000쪽에서는 가열찬 반박문을 싫었다. 그 기사는 위에서도 언급한 일본의 모형계 원로 카와노가 직접 쓴 것이었는데, 그 키트는 오류가 있는 거 맞고 내 친구 이모씨[7]가 왜 이 키트의 오류를 못 잡아냈는지 의아하다'라는 내용. 실제로 일본 모형지들에서도 그 키트는 문제가 있다고 결론이 나서 모델러 2000의 승리로 끝났다. 해당 기사는 1996년 10/11월호로 16권에 해당된다. 당시 모델러 2000은 제반사정인지 비정기적으로 두달치 통합권이 나왔다.
아무튼,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시기를 서로 건설적으로 경쟁해 모형판에 이바지하지 않고 헐뜯고 싸우는데 흘려 버렸다고 평가하며, 어느 쪽 할것없이 모형잡지에 등을 돌린 독자도 있다 카더라.
5. 부활 또 부활
창간호 | 2호 | 3호 | 4호 |
창간호 | 2호 | 3호 | 4호 |
이후 2001년 2월 '모델링 파일'이란 이름으로 부활했으나 이 책은 창간호가 곧 종간호가 되어 버렸다.
이것으로 모델러2000 계열 모형지의 명맥은 완전히 끊기고 말았으며, 유승식씨는 이후 '군사정보' 등의 밀리터리 출판사로 옮겨 발행 혹은 감수를 여러 번 맡았다고 한다. 근데 이쪽도 계속해서 책이름이 바뀌고 분리독립 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했다고.(..)
[1]
필진이 작품을 못 만들어오면 BB탄 가스건으로 쏴 버린다는 얘길 취미가 지면에 당당히 실을 정도였다.(...)
[2]
원래 유승식은 공인회계사가 직업이었고, 모델러 2000을 만들면서도 부업처럼 일을 해서 번 자금을 투입하였다
[3]
이는 판형 덕이 컸다.
[4]
이탈 필진 중 취미가에서도 먹어주던 에어로 전문 필진이던 최형인씨의 공이 컸다. 게다가 일본의 '모델 아트'등 초 유명지 필진인 카와노 요시유키 같은 모델러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었다.
[5]
원문이 진짜 이렇다!
[6]
여기에는 밀리터리 모델러 쪽에 문제의 기사를 쓴 사람이 해외 교포 모 유명 모델러였는데, 원래 몇달 전까지 취미가 쪽에서 디오라마 전문 필진으로 활동하다가 편집장님과 다투고 밀리터리 모델러 쪽으로 갔었다는 뒷사정도 있다고.
[7]
카와노는 취미가 시절에도 몇 차례 원고를 기고한 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