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로알드 달이 1953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원제는 Lamb to the Slaughter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이라는 의미로, 관용적으로는 저항할 힘 없이 끌려가거나 공격당하게 되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문자 그대로 다르게 해석해보면 '양으로 작살내다' 정도의 의미로도 읽을 수 있는 중의적 표현이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제목 센스도 인기의 원인이지만 번역에서 이 센스를 살리기는 힘들다.영미권에서는 교과서에 자주 실릴 정도로 유명한 작품으로, 추리물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본 적 있거나, 그 내용만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듯.
2. 줄거리
첫 아이를 임신 중인 주부 메어리 말로니는 경찰서 형사 패트릭 말로니의 아내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남편이 귀가했는데, 뭔가 평소와 분위기가 달라 아내는 위화감을 느낀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그저 피곤해서 그런 줄 알고 넘어가려는데, 저녁을 차려주겠다는 아내의 말을 끊고는 평소보다 술을 몇 잔 마시더니 아내에게 충격적인 말을 한다. 그 속내용은 독자들에게는 전해지지 않지만, 돈 문제는 조치를 하겠다든지, 앞으로도 당신의 생활은 돌봐줄테니까 소란 떨지 말라든지 하는 점을 봐서는 아마도...
메어리는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거진 멘붕 상태가 되어 저녁을 준비하겠다며 지하실 냉동고에 있는 양고기 다리 한 덩어리를 꺼내온다. 양 다리는 꽁꽁 얼어있어서 거의 몽둥이나 다름없었다. 패트릭은 나갈 거니까 저녁은 필요없다고 하고, 메어리는 남편이 창 밖을 보고 있는 사이에 양 다리로 뒤통수를 가격하여 즉사시킨다.
남편이 죽은 것을 본 메어리는 잠시 놀랐지만 이내 뱃속에 있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여 살인을 숨기기로 다짐하고 냉정해진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자신이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지 확인한 후 양고기를 오븐에 넣어 요리를 시작하고, 자연스러운 태도를 연습까지 하고는 근처 식료품 가게에 가서 야채와 디저트를 구매해 온다. 그리고 귀가해서는 정말로 남편의 시체를 발견하고 충격먹은 아내인 양 펑펑 울고 비명을 지르는 등 한바탕 연극을 한 뒤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들(남편 동료들)이 와서 조사하는 동안 메어리는 울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한다. 형사들은 으깨진 두개골을 보고는 뭔가 무거운 것으로 맞은 게 틀림없다고 확인하지만, 마땅한 흉기를 찾지 못한다. 경찰들은 메어리도 의심해보고 식료품 가게를 찾아가 조사도 해봤지만 여전히 별다른 증거는 발견하지 못한다.[1]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메어리는 지금 고기가 거의 다 익었다고 말하고, 저녁 시간이 다 되었는데 피곤할 거라면서 경찰들에게 식사를 하고 가라고 권유한다. 경찰들은 처음엔 사양했지만 결국 식사를 하게 되고, 메어리는 근처에 앉아서 경찰들이 흉기가 어디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분명 바로 우리 코 밑[2]가까이 있는 건 분명한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을 때 쓰는 표현이다. 이 절묘한 중의성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는 조금 힘들지만, 조금 의역해서 '바로 눈 앞'이나 '바로 코 앞' 정도로 쓰면 어느 정도 뜻이 통한다.]에 있을 텐데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혼자 킥킥댄다.
3. 기타
아이디어는 기발하고 훌륭하지만, 과학수사가 발달한 이후로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방법이다. 옛날이라면 과학수사 같은 것이 없다 보니 기껏해야 흉기의 모양이 대강 어떻다 정도밖에 알아내지 못했을 테지만, 기술이 발달한 후로는 흉기가 뭔지 순식간에 밝혀낸다. 외상의 크기 등에서 둔기로 쓰인 물체의 무게나 형태을 알아내는 건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양고기를 뭔가로 감싸서 무기로 쓴 게 아닌 이상 상처 부위에서 양고기의 DNA같은 건 금방 발견될 것이다. 설령 소설 속 내용처럼 이미 양고기를 다 먹어치웠다 하더라도 뼈나 먹다 남은 부분에서 얼마든지 대조용 표본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소설에서는 아내가 장을 보러 다녀왔더니 남편이 죽어있었다고 위장할 수 있었지만 남편이 죽은 정확한 시간이 나와버리면 그걸 속이기도 어려워진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그 당시보다 기술력이 훨씬 발전된 현대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본작이 쓰여졌을 당시에는 실제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었던 방법이다.만약 현실에서 이런 식의 살인을 저질렀다가 걸렸다면 살인죄에 덧붙여 경우에 따라서는 공무집행방해죄까지 걸릴 수도 있다.[3] 다만 작중에서도 메어리가 조사를 하러 온 경찰들이 전부 잘 알고 지낸 남편의 동료들이란 걸 적극 악용했고, 경찰들도 설마 친구의 아내가 친구를 죽였을 거라곤 믿기 어려웠기 때문에 메리에게 알리바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자마자 용의자 선상에서 제외되었다.
이 이야기는 로알드 달의 친구 이안 플레밍(!)이 '양고기 다리로 남편을 때려 죽인 다음에 고기를 조사하러 온 경찰들에게 먹이는 아내의 이야기를 써 봐라'라고 제안한 데에서 나왔다고 한다.
앨프리드 히치콕이 진행한 TV 드라마 시리즈 앨프리드 히치콕 극장에서 히치콕 본인이 직접 감독하여 1958년에 영상화되었다. 영상 보기. 여기에서는 남편이 분명하게 다른 여자가 생겼으니 떠나겠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본편이 끝나면 나오는 마무리 부분에 히치콕이 덧붙인 개그가 있는데, 메어리는 두 번째 남편도 똑같은 방법으로 죽이려고 했으나 남편이 냉동고 전기를 꽂는 걸 깜박하는 바람에 고기가 녹아 부드러워서 작전에 실패해 구속되었다고 한다(...).
로알드 달의 단편들을 영상화한 TV 드라마 시리즈 Tales of the Unexpected에서도 영상화되었다. 여기서도 패트릭이 다른 여자가 생겨 떠난다는 말을 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단, 도입부는 메어리가 식료품 가게에 갔다 왔다가 죽은 남편을 보고 경악하는 (척을 하는) 장면부터 시작하고, 진실은 중반에 메어리가 경찰 조사를 받으며 회상을 하여 밝혀진다. 또한 맨 마지막 장면에서 고기를 다 먹은 경찰들이 나갔다가 한 경찰이 돌아와서 뼈만 남은 두 개의 다리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가 싶더니, 결국엔 그냥 뼈를 쓰레기통에 버려주고 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먹을 수 있는 식재료, 그것도 얼어붙은 재료를 이용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그 흉기를 먹어서 없앤다는 트릭은 이후 만화, 영상, 추리북 등에서 엄청나게 재탕되는 소재가 된다. 나중에는 너무 우려먹어서 멍청한 형사의 헛다리 짚기용 소재로 전락할 정도.
소년탐정 김전일의 단편 살인 레스토랑도 이 소설과 비슷한 트릭이 사용되었고, 작 내에서도 소설이 지나가듯 언급되었지만, 여기서는 김전일이 범인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토대로 꼬투리를 잡아내고 사건을 해결한다.
뚱딴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추리물에도 비슷한 과정이 있다. 알고 보니 정육점 직원이 고기를 몰래 빼돌리고 있었는데 사장이 낌새를 채자 냉동 고기를 흉기로 썼다고.
[1]
게다가 메어리는 치밀하게도 계속 경찰들에게
위스키같은 걸 권하며 자신의 슬픔을 강조하면서도 수사 진행 방향을 낱낱이 살피는 모습을 보여준다.
[2]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Probably right under our very noses.' 원래 영어에서 '코 바로 근처에 있다'는 표현은 굉장히 가까이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그 중에서도 특히 '코 밑에 있다'는
[3]
증거인멸죄 및
위증죄도 추가. 다만 여담이지만,
대한민국 같은 대륙법계 국가라면 증거인멸죄는 걸리지 않는다.
범죄자 자신의
범죄의 증거를 인멸하는 건 대륙법계에서는 유죄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세한 건
기대가능성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