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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2 12:43:17

말라(승려)



襪囉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오대십국시대 후진에서 활동한 서역( 중앙아시아) 출신의 승려.

2. 생애

천복 연간(天福, 936년 음력 11월 ~ 944년 음력 6월)에 후진을 방문해 조회했는데 화복(火卜)을 잘했다. 얼마후 말라는 석경당에게 하직하고 고려를 유람하기를 청했고, 고려로 가 왕건을 만났다. 왕건은 말라를 심히 예우했는데, 이때는 거란 발해를 멸망시킨지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왕건은 조용히 말라에게
“발해는 본래 나의 親戚나라인데 그 王이 거란에 잡혔으니, 내가 後晉朝廷과 더불어 거란을 공격하여 발해왕을 구하고, 또 옛날의 원한을 갚고자 한다. 선생이 돌아가 천자에게 말하고 기일을 정해 함께 거란을 공격하기로 합시다.

고 제안했다. 말라는 석경당에게 왕건의 말을 전했지만, 석경당은 응하지 않았다. 석중귀가 즉위한 후 거란과 전쟁이 발발하자, 말라는 석중귀에게 이 사실을 아뢰었다. 945년 11월, 석중귀는 곽인우(郭仁遇)를 고려로 파견해 혜종(고려)를 고려왕으로 인정하면서 고려로 보내 거란을 공격해 후방을 위협하도록 명했으나 이것도 흐지부지되었다.[1]

3. 기록

[後晋 齊王 開運二年]初 高麗王建 用兵呑滅隣國 頗彊大(事見二百八十一卷高祖天福元年) 因胡僧襪囉言於高祖曰 勃海我昏姻也 其王爲契丹所虜 請與朝廷共擊取之 高朝不報 及帝與契丹爲仇 襪囉復言之 帝慾使高麗擾契丹東邊 以分其兵勢 會建卒 子武自稱權和國事 上表告喪 十一月戊戌 以武爲大義軍使高麗王 遣通事舍人郭仁遇使其國 諭指使擊契丹 (畏契丹知之 不形諸詔命 以詔指諭之而已) 仁遇至其國 見其兵極弱 曏者襪囉之言 特建爲誇誕耳 實不敢與契丹爲敵 (宋白曰 晋天福中 有西域僧襪囉來朝 善火卜 俄辭高祖 請遊高麗 王建甚禮之 時契丹倂勃海之地有年矣 建因從容謂襪囉曰 勃海本吾親戚之國 其王爲契丹所虜 吾欲爲朝廷攻而取之 且欲平其舊怨 師廻 爲言於天子 當定期兩襲之 襪囉還 具奏 高朝不報 出帝與契丹交兵 襪囉復奏之 帝遣郭仁遇 飛詔謙建深攻其地以牽脅之 會建已卒 武知國事 與其交之大臣不叶 自相魚肉 內難稍平 兵威未振 且夷人怯懦 襪囉之言皆建虛誕耳) 仁遇還 武更以它故爲解(『資治通監』권제285, 後晋紀6, 齊王下, 開運2年條

4. 출처

http://contents.nahf.or.kr/id/NAHF.edeah.d_0003_0010_0020_0030

[1] 고려를 방문한 곽인우는 고려의 군사가 약하여 지난번 말라의 말이 단지 왕건의 과장일 뿐이며 사실은 감히 거란과 적수가 되지 못함을 알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