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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6 19:15:19

마티아스 알렉산다르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파일:Mathias_Alexander_von_Ungern_Sternberg.jpg

1. 개요2. 일생
2.1. 7년 전쟁 까지의 경력2.2. 7년 전쟁

1. 개요

스웨덴의 군인. 7년 전쟁 시기 포메른에서 스웨덴군을 이끌고 프로이센군과 대적했다.
먼 후손 중에 20세기 초의 풍운아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가 있다.

2. 일생

2.1. 7년 전쟁 까지의 경력

알렉산다르는 1689년 3월 3일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1706년 17살 때 프랑스군에 입대했고, 곧 렌크 대령의 연대에서 소령이 되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시기인 1708년 7월 1일 오우데나르데 전투에 참여했다가 포로로 잡혔고, 1709년에 네덜란드 군에 입대해 그해 9월 11일 말플라케 전투에 참여했다. 그후 알렉산다르는 스웨덴으로 돌아가 1710년 3월 10일 헬싱보리 전투 직전에 스텐보크 백작의 군대에 입대하여 아셰베르크 드래곤 중대를 지휘했다. 알렉산다르는 후에 왕립 드래곤 분대의 소령을 맡았고, 1731년 대령으로 승진했다.

1742년 스웨덴-러시아 전쟁이 발발하자, 알렉산다르는 전장에 참여했으나 러시아군에게 일방적으로 밀려 연말에 가까스로 핀란드를 떠나 스톡홀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정치에 관여했으며 귀족 의회 부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맡았다. 1743년에는 대령으로 승진했고, 1742년엔 기병대 중장이 되었고 1751년엔 대장, 그리고 마침내 1753년에는 원수가 되었다.

2.2. 7년 전쟁

1757년 스웨덴이 7년 전쟁에 참가한 후, 알렉산다르는 포메른에 파견된 스웨덴군의 지휘를 맡았다. 그러나 그는 포메른에서 스웨덴군의 형편없는 질과 기강, 그리고 보급의 미비로 인해 포메른에서의 작전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그해 겨울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면서 수많은 병사들이 동사하는 악재를 겪었다. 결국 알렉산다르는 이런 군대로 잘 훈련된 프로이센군에 대항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판단하고 스웨덴 의회에 아군 경기병대가 부족하고 혹독한 겨울에서 작전 수행이 불가능하니 더이상 공세를 감행할 자신이 없다면서 자신을 교체시켜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스웨덴 의회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구스타프 프레드리크 폰 로젠을 새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이후 알렉산다르는 말년을 조용히 보내다가 1763년 1월 13일 쇠데르만란드 주의 아스 뫼노르에서 사망했다. 향년 7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