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동북아시아, 중국, 만주, 한국, 고고학, 고문서학 주제로 연구하는 동아시아문명학자, 한국학자, 고고학자, 역사학자 # 2003년에 동아시아언어문명학으로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 # 부여사를 한국이나 중국보다 최초로 체계적으로 다룬 부여 분야 전문가로서 역사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2. 소개
2.1. 최초의 체계적인 부여사 연구
부여의 역사는 아직까지도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미지의 역사이며, 부여인의 삶을 전하는 문헌기록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이고, 이에 따라 학계의 연구 또한 큰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2017년에도 한국 학계에서 부여사 분야는 현재도 연구자가 매우 부족할 뿐만 아니라, 발표되는 연구 성과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크 바잉턴 박사는 2003년 봄, 부여사 분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마크 바잉턴은 2003년 5월에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논문 「부여국과 그 사람들, 그 유산의 역사(A history of the Puyŏ State, its People, and its Legacy)」를 발표했다. 이 논문은 당시까지도 불모지와 같던 부여사 분야를 최초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탁월한 성과였다. 2003년 당시 부여사를 전론으로 다룬 최초의 박사학위논문이었다. 부여의 역사는 한국도 중국도 아닌 미국에서 마크 바잉턴에 의해 최초로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2016년에는 박사학위논문에 약간의 수정을 거쳐 하버드 대학 아시아센터(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에서 동북아시아의 고대국가 부여(The Ancient State of Puyŏ in Northeast Asia - Archaeology and Historical Memory)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하였다.부여의 역사는 아직까지도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미지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부여인의 삶을 전하는 문헌기록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이고, 이에 따라 학계의 연구 또한 큰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근래에 들어 옛 부여인들이 살던 곳에서는 수많은 고고학적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어, 부여사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 덕분에 지금은 부여인들의 일상을 희미하게나마 더듬어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학계에서 부여사 분야는 현재도 연구자가 매우 부족할 뿐만 아니라, 발표되는 연구 성과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도 14년 전 무렵인 2003년 봄, 이 부여사 분야에 겁 없이 뛰어들었던 푸른 눈의 연구자가 있었다. 바로 마크 바잉턴(Mark Edward Byington) 박사였다. 2003년 5월에 하버드 대학에서 발표된 그의 박사학위논문 「부여국과 그 사람들, 그 유산의 역사(A history of the Puyŏ State, its Pe>ople, and its Legacy)」는 당시까지도 불모지와 같던 부여사 분야를 처음 체계적으로 정리한 탁월한 성과였다.
일단 이는 부여사를 전론으로 다룬 최초의 박사학위논문이었다. 부여의 역사는 한국도 중국도 아닌 머나먼 이국땅 미국에서 한 외국인 연구자에 의해 처음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이어서 그 이듬해인 2004년에는 중국 길림대학교(吉林大學校)에서 한국인 학자 이종수(李鍾洙, 현 단국대학교 교수)에 의해 두 번째 부여사 박사학위논문이 발표되었고, 이 두 연구에 의해 부여사 연구는 새로운 지평을 맞이하게 된다.
...
2016년에는 그의 박사학위논문이 약간의 수정을 거쳐 하버드 대학 아시아센터(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에서 동북아시아의 고대국가 부여(The Ancient State of Puyŏ in Northeast Asia - Archaeology and Historical Memory)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하였다.
이승호(동국대 강사), 마크 바잉턴(Mark E. Byington)의 부여사 연구, 그 단상 # #
그런데 지금으로부터도 14년 전 무렵인 2003년 봄, 이 부여사 분야에 겁 없이 뛰어들었던 푸른 눈의 연구자가 있었다. 바로 마크 바잉턴(Mark Edward Byington) 박사였다. 2003년 5월에 하버드 대학에서 발표된 그의 박사학위논문 「부여국과 그 사람들, 그 유산의 역사(A history of the Puyŏ State, its Pe>ople, and its Legacy)」는 당시까지도 불모지와 같던 부여사 분야를 처음 체계적으로 정리한 탁월한 성과였다.
일단 이는 부여사를 전론으로 다룬 최초의 박사학위논문이었다. 부여의 역사는 한국도 중국도 아닌 머나먼 이국땅 미국에서 한 외국인 연구자에 의해 처음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이어서 그 이듬해인 2004년에는 중국 길림대학교(吉林大學校)에서 한국인 학자 이종수(李鍾洙, 현 단국대학교 교수)에 의해 두 번째 부여사 박사학위논문이 발표되었고, 이 두 연구에 의해 부여사 연구는 새로운 지평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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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는 그의 박사학위논문이 약간의 수정을 거쳐 하버드 대학 아시아센터(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에서 동북아시아의 고대국가 부여(The Ancient State of Puyŏ in Northeast Asia - Archaeology and Historical Memory)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하였다.
이승호(동국대 강사), 마크 바잉턴(Mark E. Byington)의 부여사 연구, 그 단상 # #
2.2. 경력
하버드 대학교 한국연구원의 초기 한국 프로젝트의 설립자이자 프로젝트 책임자이다. 초기 한국 역사와 고고학에 초점을 맞춘 편집된 연재 출판물인 초기 한국 프로젝트의 편집자로도 일하고 있다. 또한 초기 한국 프로젝트 수시 시리즈의 시리즈 편집자를 맡았다.1996년 하버드 대학 동아시아 지역학 프로그램에서 석사 학위를, 2003년 하버드 대학 동아시아 언어문명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관심사는 고구려와 부여 등 초기 한국 국가의 형성과 발전에 있다. 1997년과 1998년에 중국 동북부의 지린 대학에서 부여와 고구려의 역사와 고고학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수행했다. 2006년 초기 한국 역사와 고고학 분야의 영어 발전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 하버드 대학교에 초기 코리아 프로젝트를 설립했다. 설립 과정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으로부터 다년간 보조금을 받았다. 2009년, 그는 서울 이화대학교에서 열린 하버드 여름학교 프로그램에서 "한국 초기 역사와 고고학의 모험"이라는 제목의 강좌를 가르쳤다. # #
2.3. 한국의 유사역사학에 의해 중단된 하버드 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고대사연구실의 고대 한국 프로젝트
이상에서 살펴본 그의 부여사 연구는 연구 그 자체로도 탁월한 성과라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이유 외에도 한국 학계의 입장에서는 그의 연구가 소중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우선 한국사의 관점에서 부여사를 바라보고 접근하는 그의 시각은 한국 고대사에 대한 구미 학계의 관심을 확장하고 연구를 활성화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그의 연구는 타자의 시선에서 한국 고대사에 접근하고, 이를 통해 한국 학계의 연구 경향에 참신한 문제제기를 제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ㆍ중 학계 사이에 언제나 첨예한 논쟁을 내재하고 있는 고구려사ㆍ부여사 분야를 한국사의 시각에서 접근하고자 했던 그의 연구 방법론 또한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근래에 들어 부여사를 바라보는 바잉턴의 시각에 약간의 변화가 엿보이기도 하는데, 우선 박사학위논문의 1장 ‘한국 역사의 시작(The Beginnings of Korean History)’이란 장 제목이 ‘동북아시아에서 역사의 시작(The Beginnings of History in Northeast Asia)’으로 바뀐 것이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그 서술 면에서도 한국사적 시각을 조금 덜어내는 한편, 동북아시아라는 보다 넓은 시야에서 부여사를 위치시키고자 하는 변화가 엿보인다. 이는 시각의 변화라기보다는 동북아시아 고대 정치체에 대한 그의 연구 시야가 보다 확장된 결과일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염려되는 부분은, 이러한 서술 상의 변화에 지난 2014년의 일이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동북아역사재단은 국제교류재단과 함께 하버드 대학교 한국학연구소(The Korea Institute, The Harvard University) 한국고대사연구실의 ‘한국 고대사 프로젝트(EKP)’를 지원한 바 있다. 마크 바잉턴 박사 또한 이 프로젝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연구자였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2014년 동북아역사재단의 갑작스런 지원 중단을 계기로 당초 계획된 과정을 온전히 마무리 짓지 못한 채 2016년 말 종료되고 말았다.
지원 중단의 배경에는 ‘한국 고대사 프로젝트’의 결과물 중 하나이자 마크 바잉턴 박사가 집필을 맡았던 한국 고대사에서 한 군현(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이라는 책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서술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서술이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을 촉진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당시 정치권과 일부 관계를 맺고 있던 유사역사학 추종자들은 이 프로젝트에 압력을 가했고, 결국 그것이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 중단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물론 이는 어처구니없는 모함에 지나지 않으며, 현재 한국 학계에서 ‘낙랑군 재 평양설’은 정설의 위치에 있다. 바잉턴 교수는 한국 학계에서 상식으로 통용되는 입장과 연구 성과를 정리하여 구미 학계에 소개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터무니없는 비판을 받았던 것이다. 이 일은 당시 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다지 큰 이슈가 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지난 6월 당시 도종환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당시 장관 후보자였던 도종환 의원의 역사 인식에 대한 학계와 시민사회의 깊은 우려 때문이었다.
도종환 의원은 그동안 일부 유사역사학의 논리를 추종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고, 그러한 후보자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제기되었다. 예컨대 2016년에는 유사역사학 추종자들과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가 주도하여 ‘동북아역사지도사업’을 폐기시킨 일이 있었는데, 당시 대책특위 위원 중 한 명이었던 도종환 의원은 지도 상에 낙랑군이 평양에 표기된 것에 대해 강한 문제 제기를 한 바 있다(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 회의록 2015.3). 이는 앞서 ‘한국 고대사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당시 내세운 논리와도 매우 흡사한 것이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당시 마크 바잉턴 박사는 2014년 동북아역사재단의 지원 중단을 계기로 ‘한국 고대사 프로젝트’가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한 채 마무리되면서, 한국 고대사 연구를 더 진척시키기 못한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였다([분수대] 도종환과 바잉턴. 2017.6.9. 중앙일보 35면). 또 도종환 당시 후보자의 민족주의적 사관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하버드 대학 내 인류학(고고학)과에서 중국 동북 지역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부여ㆍ고구려ㆍ발해 등에 대한 관심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해당 프로그램은 한국사가 아닌 중국사 중심으로 구축되었기에 앞으로 그의 한국사 연구에는 많은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예상된다.
이승호(동국대 강사), 마크 바잉턴(Mark E. Byington)의 부여사 연구, 그 단상 # #
다만 근래에 들어 부여사를 바라보는 바잉턴의 시각에 약간의 변화가 엿보이기도 하는데, 우선 박사학위논문의 1장 ‘한국 역사의 시작(The Beginnings of Korean History)’이란 장 제목이 ‘동북아시아에서 역사의 시작(The Beginnings of History in Northeast Asia)’으로 바뀐 것이 눈에 띈다. 뿐만 아니라 그 서술 면에서도 한국사적 시각을 조금 덜어내는 한편, 동북아시아라는 보다 넓은 시야에서 부여사를 위치시키고자 하는 변화가 엿보인다. 이는 시각의 변화라기보다는 동북아시아 고대 정치체에 대한 그의 연구 시야가 보다 확장된 결과일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염려되는 부분은, 이러한 서술 상의 변화에 지난 2014년의 일이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동북아역사재단은 국제교류재단과 함께 하버드 대학교 한국학연구소(The Korea Institute, The Harvard University) 한국고대사연구실의 ‘한국 고대사 프로젝트(EKP)’를 지원한 바 있다. 마크 바잉턴 박사 또한 이 프로젝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연구자였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2014년 동북아역사재단의 갑작스런 지원 중단을 계기로 당초 계획된 과정을 온전히 마무리 짓지 못한 채 2016년 말 종료되고 말았다.
지원 중단의 배경에는 ‘한국 고대사 프로젝트’의 결과물 중 하나이자 마크 바잉턴 박사가 집필을 맡았던 한국 고대사에서 한 군현(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이라는 책이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서술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서술이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을 촉진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당시 정치권과 일부 관계를 맺고 있던 유사역사학 추종자들은 이 프로젝트에 압력을 가했고, 결국 그것이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 중단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물론 이는 어처구니없는 모함에 지나지 않으며, 현재 한국 학계에서 ‘낙랑군 재 평양설’은 정설의 위치에 있다. 바잉턴 교수는 한국 학계에서 상식으로 통용되는 입장과 연구 성과를 정리하여 구미 학계에 소개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터무니없는 비판을 받았던 것이다. 이 일은 당시 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다지 큰 이슈가 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지난 6월 당시 도종환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당시 장관 후보자였던 도종환 의원의 역사 인식에 대한 학계와 시민사회의 깊은 우려 때문이었다.
도종환 의원은 그동안 일부 유사역사학의 논리를 추종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고, 그러한 후보자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제기되었다. 예컨대 2016년에는 유사역사학 추종자들과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가 주도하여 ‘동북아역사지도사업’을 폐기시킨 일이 있었는데, 당시 대책특위 위원 중 한 명이었던 도종환 의원은 지도 상에 낙랑군이 평양에 표기된 것에 대해 강한 문제 제기를 한 바 있다(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 회의록 2015.3). 이는 앞서 ‘한국 고대사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당시 내세운 논리와도 매우 흡사한 것이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당시 마크 바잉턴 박사는 2014년 동북아역사재단의 지원 중단을 계기로 ‘한국 고대사 프로젝트’가 제대로 끝을 맺지 못한 채 마무리되면서, 한국 고대사 연구를 더 진척시키기 못한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였다([분수대] 도종환과 바잉턴. 2017.6.9. 중앙일보 35면). 또 도종환 당시 후보자의 민족주의적 사관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하버드 대학 내 인류학(고고학)과에서 중국 동북 지역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부여ㆍ고구려ㆍ발해 등에 대한 관심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해당 프로그램은 한국사가 아닌 중국사 중심으로 구축되었기에 앞으로 그의 한국사 연구에는 많은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예상된다.
이승호(동국대 강사), 마크 바잉턴(Mark E. Byington)의 부여사 연구, 그 단상 # #
3. 평가
부여의 역사는 아직까지도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미지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부여인의 삶을 전하는 문헌기록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이고, 이에 따라 학계의 연구 또한 큰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근래에 들어 옛 부여인들이 살던 곳에서는 수많은 고고학적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어, 부여사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그 덕분에 지금은 부여인들의 일상을 희미하게나마 더듬어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학계에서 부여사 분야는 현재도 연구자가 매우 부족할 뿐만 아니라, 발표되는 연구 성과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도 14년 전 무렵인 2003년 봄, 이 부여사 분야에 겁 없이 뛰어들었던 푸른 눈의 연구자가 있었다. 바로 마크 바잉턴(Mark Edward Byington) 박사였다. 2003년 5월에 하버드 대학에서 발표된 그의 박사학위논문 「부여국과 그 사람들, 그 유산의 역사(A history of the Puyŏ State, its People, and its Legacy)」는 당시까지도 불모지와 같던 부여사 분야를 처음 체계적으로 정리한 탁월한 성과였다.
일단 이는 부여사를 전론으로 다룬 최초의 박사학위논문이었다. 부여의 역사는 한국도 중국도 아닌 머나먼 이국땅 미국에서 한 외국인 연구자에 의해 처음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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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여러 연구들이 말해주듯 바잉턴 박사는 우리가 흔히 ‘만주’라고 부르는 지금의 중국 동북 3성 지역 고대국가에 대해 오랜 기간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진행한 일련의 연구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오늘날 중국 동북 3성 지역의 고대국가를 탐구하면서도, 이를 한국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구려와 백제에 남겨진 부여사의 유산에 대한 집요한 추적은 그러한 연구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바잉턴 박사는 한국고대사 분야에 확장된 시각을 제공하는 한편,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의식도 던지며 한국 학계의 연구 환경을 새롭게 환기시켜주는 연구들을 제시해 왔다. 그리고 그만큼 한국 학계 입장에서는 매우 소중한 연구자였다. 적어도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던 ‘고대한국 프로젝트(Early Korea Project)’가 중단되는 2014년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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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여의 역사를 한국 역사의 시작선상에서 파악한 연구자이다. 특히 1장의 서술 중 “엄밀하게 볼 때 그 직접적인 통치 영역이 한반도에 미치진 못했지만, 한국사 최초의 국가 수준 정치 조직은 부여”라는 언급은 부여사와 한국 고대사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07년 1월 중국의 동북공정이 공식적으로 끝난 이후로도 현재까지 ‘포스트 동북공정’ 국면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부여사 연구의 현실을 생각할 때, 이와 같은 그의 연구 시각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바잉턴 박사의 한국사 연구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지원 중단을 당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같은 연구자로서 참담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소중한 타자의 시선을 이렇게 밖으로 내몰고 말았다.
이승호(동국대 강사), 마크 바잉턴(Mark E. Byington)의 부여사 연구, 그 단상 # #
부여 연구와 선구자이자 한국 역사학계에서 매우 소중했던 역사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도 14년 전 무렵인 2003년 봄, 이 부여사 분야에 겁 없이 뛰어들었던 푸른 눈의 연구자가 있었다. 바로 마크 바잉턴(Mark Edward Byington) 박사였다. 2003년 5월에 하버드 대학에서 발표된 그의 박사학위논문 「부여국과 그 사람들, 그 유산의 역사(A history of the Puyŏ State, its People, and its Legacy)」는 당시까지도 불모지와 같던 부여사 분야를 처음 체계적으로 정리한 탁월한 성과였다.
일단 이는 부여사를 전론으로 다룬 최초의 박사학위논문이었다. 부여의 역사는 한국도 중국도 아닌 머나먼 이국땅 미국에서 한 외국인 연구자에 의해 처음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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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여러 연구들이 말해주듯 바잉턴 박사는 우리가 흔히 ‘만주’라고 부르는 지금의 중국 동북 3성 지역 고대국가에 대해 오랜 기간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진행한 일련의 연구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오늘날 중국 동북 3성 지역의 고대국가를 탐구하면서도, 이를 한국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고구려와 백제에 남겨진 부여사의 유산에 대한 집요한 추적은 그러한 연구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바잉턴 박사는 한국고대사 분야에 확장된 시각을 제공하는 한편,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의식도 던지며 한국 학계의 연구 환경을 새롭게 환기시켜주는 연구들을 제시해 왔다. 그리고 그만큼 한국 학계 입장에서는 매우 소중한 연구자였다. 적어도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던 ‘고대한국 프로젝트(Early Korea Project)’가 중단되는 2014년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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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여의 역사를 한국 역사의 시작선상에서 파악한 연구자이다. 특히 1장의 서술 중 “엄밀하게 볼 때 그 직접적인 통치 영역이 한반도에 미치진 못했지만, 한국사 최초의 국가 수준 정치 조직은 부여”라는 언급은 부여사와 한국 고대사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07년 1월 중국의 동북공정이 공식적으로 끝난 이후로도 현재까지 ‘포스트 동북공정’ 국면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부여사 연구의 현실을 생각할 때, 이와 같은 그의 연구 시각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바잉턴 박사의 한국사 연구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지원 중단을 당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같은 연구자로서 참담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소중한 타자의 시선을 이렇게 밖으로 내몰고 말았다.
이승호(동국대 강사), 마크 바잉턴(Mark E. Byington)의 부여사 연구, 그 단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