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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와 항구와 옛 건물
1. 개요
티그리냐어 ምጽዋዕ아랍어 مصوع
이탈리아어 Maçuá
영어 Massawa
에리트레아 중북부의 항구 도시. 수도 아스마라에서 동북쪽으로 70km 떨어져 있으며, 인구는 6만명이다. 중세 시대 홍해의 아프리카 연안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였고, 1897년까지 이탈리아 제국령 에리트레아의 총독부가 있었다. 해안가에 입지했음에도 연평균 기온이 30도로, 세계에서 가장 더운 항구 도시로 불린다. 북쪽의 수아킨과 마찬가지로 앞바다에 있는 두 섬이 구도심이다.
2. 역사
마사와 항구의 구도심의 옛 건물 | 이탈리아 지배기의 토리노 호텔 |
1513년 포르투갈이 점령했다가 1557년 오스만 제국령이 되어 3세기 가량 그 지배를 받았다. 19세기 들어서는 메흐메트 알리의 이집트가 실효 지배했는데 1876년 에티오피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지배력이 약화된 틈에 1885년 이탈리아가 점령하였다. 1897년 아스마라로 중심지가 옮겨진 후에도 마사와는 그 항구로써 번영하였고, 1938년 1만 5천의 주민 중 2천명이 이탈리아인이었다.
두 차례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탈리아 총독궁
다만 2차 세계 대전 도중 영국군의 공격으로 항구가 크게 파괴되었고, 바다와의 연결을 잃기 싫었던 에티오피아는 에티오피아-에리트리아 전쟁 때에 마사와 방어를 위해 노력하였다. 1990년 2월 에리트레아 인민 해방 전선의 수륙 양면 기습 공격으로 마사와를 점령하자, 에티오피아 군은 도시에 공습을 가하여 또다시 큰 피해를 입혔다. 20세기를 거치며 번영과 파괴를 겪은 마사와는 에리트레아 독립 후 복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