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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15:48:54

마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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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이메레티 왕국 23대 군주
მამუკა | 마무카
제호 한국어 마무카
조지아어 მამუკა
라틴어 Mamuka
가족 기오르기 7세(아버지)
타마르 로담(어머니)
알렉산드레 5세(형)
기오르기 9세(이복 동생)
로톰(이복 동생)
타마르(누이)
투타(누이)
아나(이복 누이)
다레얀 다디아니(아내)
테이무라즈(장남)
기오르기(차남)
생몰 년도 미상 ~ 1769년
재위 기간 1746년 ~ 1749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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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차 이메레티 왕국 23대 군주.

2. 생애

2차 이메레티 왕국 19대 군주 기오르기 7세 카르틀리 왕국 군주 기오르기 11세의 딸 로담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친형으로 알렉산드레 5세, 누이로 타마르, 투타가 있었고, 이복 형제로 기오르기 9세, 아나, 로톰이 있었다. 1732년 밍그렐리아 공국 공작 오티아 다디아니, 주라브 아바시제, 그리골 치헤이드제 등은 알렉산드레 5세를 타도하고 그를 왕위에 올리고자 반란을 일으켰다. 그가 오티아 다디아니, 그리골 치헤티제 등과 함께 이메레티를 침략하고 쿠타이시를 향한 맹공을 퍼부었지만, 알렉산드레 5세는 술루키제의 군 사령관 레반 아바시제와 바리 공작 게데반과 연합하여 쿠타이시를 지켰다. 그러다 오스만 제국이 침공 위협을 가하자, 반란군은 쿠타이시에서 철수했다.

1733년, 오스만군은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에 병력을 보내라는 요구를 거절한 오티아 다디아니를 응징하고자 밍그렐리아를 파괴하고 성 게오르기오스 성당을 불태웠다. 이후 압하지야로 진격했고, 압하지야인들은 오스만군의 약탈을 피해 코카서스 산맥으로 피난했다. 압하지야 공작은 저항을 포기하고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하미드 베이가 되었으며 사로잡힌 수천 명의 민간인들은 노예로 팔려갔다. 이로 인해 그의 지지세력이 쇠진해졌지만, 알렉산드레 5세가 오스만 제국의 원정에 가담했다가 아조프까지 가는 걸 거부하고 이메레티로 돌아가다가 오스만군의 응징을 받고 패퇴하면서 기회를 잡았다.

1734년, 그는 오티아 다디아니, 그리골 라차, 주라브 아바키제의 지원을 받아 다시 반란을 일으켯다. 반란군이 밀려오자, 알렉산드레 5세는 구리아 공작 마미아 4세, 레반 아바키제, 캇소 다디아니, 바리의 귀데반, 메라브 툴루키제, 그리고 몇몇 소수 이메르 귀족들과 함께 반란군에 맞섰다. 양군은 1734년 겨울 치코리에서 맞붙었다. 한창 격전이 벌어진 끝에 오티아 다디아니가 중상을 입고 왕실 근위대에 붙잡혔고, 캇소 다디아니는 전사했다. 알렉산드레 5세는 승리를 거둔 뒤 도망치는 자들을 추격하여 수백명의 라차, 밍그렐리아, 레차 귀족들을 붙잡아 오스만 제국에 노예로 팔았으며, 1,700명의 반란군 포로들을 쿠타이시로 끌고 갔다.

하지만 그를 붙잡아 죽이려던 알렉산드레 5세의 계획은 오스만 제국의 개입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다. 그는 사칠라오와 사미켈라오 지방을 제안받았고, 오티아 다디아니는 석방된 뒤 잃어버렸던 영토를 되찾았다. 또한 오스만군은 더 이상 알렉산드레 5세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 이에 고무된 귀족들 알렉산드레 5세를 상대로 반란을 꾀했다. 1734년 말, 그는 세베카 성채를 공략하고 사치드자바초 일대를 공략했다. 또한 1735년 알렉산드레 5세와 주라브 아바사제 사이의 평화 협약에 화가 난 파푸나 체레텔리가 반란을 일으켰다. 알렉산드레 5세는 즉각 군대를 일으켜 사세레텔로 전역을 파괴했지만, 파푸나의 거주지인 모담나케 요새는 함락시키지 못했다.

1741년 이복 형제 기오르기 9세가 오스만 제국의 지원을 받아 왕위에 오르자, 그는 알렉산드레 5세와 함께 이메레티를 떠나 카르틀리로 망명했다. 1742년 왕위에 복귀한 형과 함께 이메레티로 돌아온 그는 1746년 나디르 샤와 손을 잡은 알렉산드레 5세에 불만을 품은 오스만 제국의 지원에 힘입어 이메레티 왕으로 선언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알렉산드레 5세는 밍그렐리아로 피신해 이전의 적이었던 오티아 다디아니의 보호를 받았고, 카르틀리 왕 테이무아즈 2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테이무아즈 2세는 나디르 샤로부터 분쟁에 개입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승인을 받은 뒤 1748년 이메레티로 진군했으나 오스만 제국군이 보급을 끊자 많은 병사가 굶어죽고 여러 지휘관이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은 지원 대상을 그에게서 알렉산드레 5세에게로 돌렸고, 알렉산드레 5세는 이에 힘입어 마무카를 물리치고 왕위에 복귀했다.

이후 사미켈라오 공작을 칭하며 조용히 지내던 그는 1752년 형이 죽고 조카 솔로몬 1세가 왕위에 오르자 반란을 일으켰지만 패배했고, 오스만 제국의 영역인 차일다르로 망명했다. 1757년 차일다르의 하지 아마드 파샤가 대군을 모아 그를 왕위에 앉히기로 했고, 에리스타비 라치, 로스톰 치헤이드제는 그들의 편에 섰다. 그러나 흐레실라 전투에서 이메레티-밍그렐리아 연합군에게 참패해 왕위 복귀에 실패했다. 1766년 오스만 제국의 지원에 힘입어 이메레티를 공략하고 테이무라즈를 이메레티 왕위에 옹립했다. 그러나 1768년 솔로몬 1세의 반격으로 격파당하자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했고, 1769년 사망했다.

그는 1732년경 밍그렐리아 공작 베잔 다디아니의 딸인 다레얀 다디아니와 결혼하여 두 아들 테이무라즈와 기오르기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