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마르셀 프티오 Marcel Petio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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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마르셀 앙드레 앙리 펠릭스 프티오 Marcel André Henri Félix Petiot |
출생 | 1897년 1월 17일 |
사망 | 1946년 5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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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연쇄살인범.2. 상세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이 점령했던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면서 23명을 죽인 의사이자 연쇄살인범. 일생동안 약 60-200명의 희생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실제 발견된 희생자 수는 23명이 전부다. 희생자 중에는 유대인, 레지스탕스, 일반 범죄자 등 다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환자들에게 친절함으로 인기가 높았으며, 살인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파리 의과대학에서 해부학 실험을 하다 살인을 하면 무슨 기분일지 궁금해서였다고 한다.그는 거짓으로 나치에 쫓기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나치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아르헨티나, 남미 등으로 나갈 수 있는 루트를 본인이 가지고 있다며 접근하였다. 그가 제시한 가격은 1인당 25,000프랑이었다. 그는 희생자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Dr. Eugène”이라는 가짜 코드네임을 사용하였고 본인을 레지스탕스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그후 탈출할 국가에서 질병때문에 예방접종을 한 사람만 입국이 가능하다고 속인 뒤 병원에 초대하여 예방접종을 가장한 치사량의 맹독을 주입했다고 한다.
그후 방음처리가 되어있는 자신이 살인을 위해서 설계한 진료실 옆 밀실로 이동해 옮긴뒤 유대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볼수 있게 구멍을 뚫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센느강에 시신을 유기 했으나 그후 토막내거나 불태워서 없앴다고 한다. 1944년 3월, 이웃들이 그의 집에서 다량의 연기와 악취가 난다고 신고하여 경찰이 출동했고 소방관 한명이 그의 집 지하에서 석탄 난로를 발견했다. 아직 활활 타오르는 난로 속에서 사람의 뼈 등이 발견되었고, 뒷마당이나 그의 캔버스 가방에서도 발견되었다.
또한 희생자들의 옷가지와 다영한 물건들도 발견되었다.
그는 5번의 재판을 치렀는데, 자신의 살인 방법을 웃으면 설명한다든가 재판 도중 조는 등을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27명중 19명의 살인건을 인정하였지만 희생자들이 독일인이었다던가 나치 부역자였다는 둥 헛소리또한 아끼지 않았다.
결국 재판에서 25명의 살인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사형을 선고 받고 1946년 5월 단두대에 처형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