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zal Park hostage-taking incident[1]
馬尼拉人質事件 / Manila hostage crisis[2]
8·23香港人质事件[3]
1. 개요
2010년 8월 2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발생한 버스 인질극.2. 전개
2.1. 시작
2010년 8월 23일 아침 운전사 및 가이드까지 합쳐 필리핀인 3명과 22명의 홍콩인 관광객들을 태운 홍콩 여행사 홍타이(康泰) 버스 799호는 마닐라의 스페인 거주구역에서 호국영웅 묘지로 향하고 있었다. 홍타이 그룹은 홍콩 내 유명한 여행사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홍콩 및 마카오 출신 관광객들을 보내는 회사다.그런데 필리핀 경찰 근무복을 입고 M16A1 자동소총을 휴대한 한 남성이 버스를 세우고 올라탔다. 그는 갑자기 총을 빼들고 운전기사와 가이드, 버스에 탄 관광객들을 인질로 삼고 마닐라 시내로 버스를 몰고 가게 했으며 시내로 간 후 인질극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신고를 받은 필리핀 경찰이 출동해 인질범과 대치하기 시작했다.
범인은 55세 (1955년 1월 10일 생)의 전직 필리핀 경찰관인 로날도 멘도자(Ronaldo Mendoza)였는데 한 요리사와의 갈등으로 파면되어 자신의 복직을 요구하기 위해 인질극을 벌였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멘도자는 처음엔 인질들에게 우호적이었다. 애당초 목적은 복직이었기 때문에 인질로 잡은 한 홍콩 노부인이 복통을 일으키자 그녀를 풀어주었고 인질 4명을 더 풀어주었으며 복직 신청을 조건으로 당뇨를 앓고 있던 홍콩인 노신사도 석방했다. 그러나 경찰은 석방된 인질 둘에게 버스의 상황을 전혀 묻지 않는 엉뚱한 짓을 저질렀다.
2.2. 경찰의 삽질과 사태의 악화
그러나 사태는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다. 멘도자의 남동생이 그를 만나려고 무단으로 폴리스 라인을 넘어 총기를 소지한 채 버스로 다가가려고 하자 경찰이 제지했는데 이때 경찰이 무작정 멘도자의 동생을 구금하자 멘도자는 점점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경찰은 멘도자에게 복직을 고려한다는 문서를 보냈으나 이는 멘도자의 성질만 돋우고 말았다. 이 문서를 받은 멘도자는 이를 복직 서류로 알고 있었으나 전화로 멘도자를 인터뷰하던 기자가 내용을 읽어 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복직 약속이 아닌 고려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멘도자는 라디오 방송과의 생방송 인터뷰에서 격정을 토로했으나 이때 협상팀과 위기대응팀은 현장을 벗어나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다.
설상가상으로 경찰이 맨도자의 동생을 경찰서로 끌고 가려고 하자 멘도자의 동생과 조카가 거세게 부당함을 호소하며 항의했고 이 광경을 본 멘도자는 결국 폭발했다. 멘도자와 실시간 인터뷰를 하던 라디오 앵커가 위기 대응팀을 찾을 정도로 다급한 순간이었으나 경찰은 멘도자의 동생을 순찰차에 태우는 데만 정신이 팔려 정작 멘도자와 인질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2.3. 최악의 결말
결국 폭발한 멘도자가 인질들을 쏴죽이기 시작했다. 겁을 먹은 버스기사가 도주해 빠져나올 때까지도 경찰은 인질들이 죽어가는데도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보다못한 필리핀 경찰 기동타격대가 멘도자의 제압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당시 영상을 보면 경찰이 망치로 문을 부수려다가 망치를 놓쳐서 문 안으로 날아가 버리고 @ 문 안에 손을 넣어 망치를 건지기는 하였으나 진입이 불가능에 가까운 버스 뒷쪽의 창문을 망치로 부수려고 하다가 결국 망치가 닿지 않아 실패하였다. 이후 다른 차량에 줄을 묶어 문을 잡아뜯으려고 했다가 줄이 끊겨 실패하는 등 결국 필리핀 경찰 특수부대인 SAF와의 지휘권 갈등 끝에 합동으로 진압작전에 나서기로 합의를 보았다.
일단 한 명의 SAF 대원이 버스 안으로 최루탄을 던져넣었으며 다른 SAF 대원이 버스에 접근하여 버스의 비상탈출구를 열어 최루 가스 때문에 멘도자가 그 쪽으로 이동하도록 유도하였다. 비상탈출구 쪽을 조준하던 SAF 저격수는 탈출구로 항하던 멘도자를 헤드샷으로 처리하였고 나머지 대원들은 차량 안으로 진입하여 인질들을 구조했다. 그러나 홍콩인 인질 8명이 사망하고 인질 7명이 크게 다쳤으며 바깥에서 구경하는 2명도 부상을 당하는 최악의 결말을 맞이했다.
3. 비극의 원인
인질극이 비극으로 끝난 원인은 경찰의 무신경과 무능에 있었다. 경찰은 인질범을 자극해선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멘도자를 계속 자극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특히 멘도자의 동생을 불필요하게 구금하려고 한 것은 멘도자를 폭발하게 만들었고 사태를 최악으로 치닫게 만들었다.게다가 경찰은 석방된 인질들에게 내부상황을 알아보지도 않았고 범인이 발광해 인질들이 살해되는 와중에 버스기사가 탈출하고 나서야 놀라서 진압을 시도했다. 이와 반대로 멘도자는 취재경쟁으로 인한 방송사들의 생방송을 버스 내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부 진입을 못 해 우물쭈물하다가 기자들이 버스 밖의 스위치로 문을 열 수 있다고 말해줄 정도였다.
어처구니없게도 멘도자를 진정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수단인 복직을 약속하는 (거짓)문서가 발급되었지만 교통체증으로 도착이 늦어져 현장에 문서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멘도자가 사망하여 상황이 끝난 뒤였다.
결국 최악의 대응과 불운이 겹치면서 최악의 결말이 나오고 말았다.
4. 사건 여파
당사국인 홍콩과 홍콩의 주권국인 중국에서는 필리핀에게 심한 비난을 퍼부었다. 홍콩에서는 반필리핀 여론까지 불타올라 필리핀인 노동자 2명이 구타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사건에서 당사자는 모두 홍콩인이고 중국 대륙인은 단 한명도 없어서 중국에서는 좀 덜했지만 홍콩의 외교를 본국인 중국이 전담하는 만큼 중국 본토에서도 조금은 이 일이 알려져 반필리핀 감정이 일기도 했다. 물론 중국 본토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보상 문제를 두고 금액 차이로 필리핀 정부랑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 사이에서 갈등을 빚었는데 외교교섭을 하던 홍콩의 본국 중국 외교부와 필리핀 외교부 간 협의가 잘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몇몇 필리핀 경찰 및 필리핀 여학생들은 참사가 벌어진 버스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벌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필리핀 대통령도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의 진입작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며 무책임하게 사과도 거부해서(그것도 해맑은 표정을 지으면서) 홍콩 전체를 분노하게도 했다. 전술한 것처럼 중국 대륙인 중에는 단 한 명도 희생자가 없고 전부 홍콩인이었기 때문에 중국 본토에선 조금덜 한 편이었으나 알았던 사람들은 중국의 일부인 홍콩 동포들이 살해되었다며 똑같이 분노했다.
결국 홍콩 특별행정구와 필리핀의 관계가 험악해졌지만 다행히 2014년 4월 23일에 전격 화해했다. 전술한 대로 중국과 필리핀 전체의 관계까진 아니었는데 중국 본토 후커우 소지자들이 아니라 홍콩 특별행정구 시민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에 중국-필리핀 관계 악화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