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몽고메리 Richard Montgome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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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738년 12월 2일 |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 더블린 소드[1] | |
사망 | 1775년 12월 31일 (향년 37세) |
영국령 캐나다 퀘벡 | |
복무 | 영국 육군 → 대륙군 |
최종 계급 | 대륙군 소장 |
학력 |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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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아일랜드 더블닌주 소드에서 태어났고 트리니티 칼리지를 다니다가 2년 뒤 영국군에 입대했다. 장성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소위로 임관했고 17보병연대에서 복무했다.1757년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핼리팩스에 도착해 케이프브리튼 섬에 위치한 루이스버그에 주둔하는 프랑스군을 공격하는 작전을 세웠다. 프랑스군 수비대는 불과 800명이며, 영국군은 13,142명의 세력에 23척의 전열함과 13척의 프리깃함 지원이 있었다. 6월 8일 공격을 개시했고 해변에 상륙해 돌격했다. 이후 포위전으로 전개되면서 탈출을 시도하는 프랑스군을 저지하는데 공을 세웠다. 이후 캐나다 전역에서 공을 세워 중위 진급과 함께 촉망받는 장교가 되었다.
이후 카리브해에서 바베이도스, 세인트루시아, 그레나다에서 공을 세웠고 대위로 진급했다. 이후 쿠바 아바나에서 요새를 급습하여 점령했다.
1763년 오타와 부족장이였던 폰티액이 영국에 반란을 일으킨 폰티액 전쟁이 발발했으며 부상을 입었음에도 공을 세웠다. 이후 뉴욕에 거주하며 결혼해 농장 경영을 하며 평온한 삶을 누리다가 보스턴 차 사건이후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이 본토 영국인들에게 강한 불만을 품었고 7년 전쟁부터 인연이 있던 조지 워싱턴의 설득으로 신생군인 대륙군이 된다.
당시 캐나다방면의 사령관이였던 필립 스카일러를 대신해 캐나다 방면 군을 이끌게 되었다. 1775년 세인트존스 요새, 몬트리올시를 점령하고 베네딕트 아놀드가 이끄는 부대와 합류해 퀘벡시에서 영국군과 전투를 치렀다.
하지만 영국군의 저항이 완강했고 새벽 6시경 기습적인 돌격을 감행했으나 영국군의 포도탄을 맞고 전사했다. 시신은 영국군에 의해 매장되었으며 이후 뉴욕시로 이장했다.
[1]
현 핑걸주 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