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3-19 03:21:01

레호이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0c420, #f0c420 20%, #f0c420 80%, #f0c420); color: #6700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670000> 추존
고상조 현조 선조 덕종
명종 홍유왕 현공왕 광업왕
장간왕 효종 우종
<rowcolor=#670000> 비정통
레방 레이 대왕 천남제자
<rowcolor=#670000> 할거정권 군주
제석강생 선화제 나평제 대덕제
복덕제

}}}}}}}}} ||

후여조 추존 황제
高上祖 明皇帝 | 고상조 명황제
묘호 고상조(高上祖)
시호 명황제(明皇帝)
성씨 레(Lê / 黎 / 여)
호이(Hối, 誨 / 회)
부친 레씨(黎氏)
모후 불명
황후 보자고명황태후(普慈高明皇太后)
생몰 ? ~ ?
1. 개요2. 생애3. 가계도

[clearfix]

1. 개요

베트남 후 레 왕조(후여조)의 추존 황제. 후여조의 초대 황제인 태조 레러이(黎利)의 증조부이다. 묘호 고상조(高上祖).[1]

2. 생애

“桂堂公《大越通史》帝紀載云:曾祖諱誨,為高上明皇帝,不知自何代追尊而不入廟祀,附錄於此。
역조헌장유지(歷朝憲章類誌) 〈卷二十一·禮儀誌·宗廟奉祀之禮〉
이름은 레호이(黎誨)[2]이다. 레호이의 선대는 전해지지 않으며 특이하게 묘호를 사용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2글자가 아닌 3글자로 이루어진 묘호를 받았다.

사서에 따르면 레호이는 남산을 지날 때, 좋은 땅이라 판단하고 별처(別處)에서 남산(藍山)으로 정착했다. 몇년 후 자신의 가세가 크게 발전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할 정도였으며 아들 레딘이 가장 자리를 계승할 땐 가문을 따르는 자들이 무려 천 여명에 도달했다고 한다.

후여조 건국 후 태조에 의해 묘호는 고상조(高上祖), 시호는 명황제(明皇帝)로 추존되었으며 아들 레딘[3]과 손자 레코앙[4]도 각각 현조(顯祖), 선조(宣祖)로 추존되었다. 다만 레호이는 황제로써 추존됐음에도 불구하고 따로 제사를 지내거나 하진 않았다고 한다.

3. 가계도



[1] Cao thượng Tổ(까오 트엉 또). [2] Lê Hối, 黎誨/여회. [3] Lê Đinh, 黎丁/여정. [4] Lê Khoáng, 黎曠/여광.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5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5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