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에 조코라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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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93697>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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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디디에 조코라 Didier Zoko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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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데기 알랭 디디에 조코라 Déguy Alain Didier Zoko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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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80년 12월 14일 ([age(1980-12-14)]세) | |
국적 |
[[코트디부아르|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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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아비장 | |
신체 | 180cm, 70kg | |
포지션 | 수비형 미드필더 | |
주발 | 오른발 | |
소속 | <colbgcolor=#093697> 유스 | ASEC 미모사 (1994~1999) |
프로 |
ASEC 미모사 (1999~2000) KRC 헹크 (2000~2004) AS 생테티엔 (2004~2006) 토트넘 홋스퍼 FC (2006~2009) 세비야 FC (2009~2011) 트라브존스포르 (2011~2014) 아키사르 벨레디예스포르 (2014~2015) 퓨네 시티 (2015) 노스이스트 유나이티드 FC (2016) 세멘 파당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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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123경기[1] 1골 ( 코트디부아르 / 2000~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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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코트디부아르의 국가대표 출신 축구 선수. 주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15년간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의 중원을 책임졌다. 코트디부아르의 A매치 최다 출장 기록(123경기)을 보유한 선수지만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2. 경력
2.1. 클럽 경력
2.1.1. 초기
코트디부아르의 수도 아비장에서 태어나 자국리그 명문 팀 ASEC 미모사스의 유소년 팀인 아카데미에 미모시프콤에서 성장했다. 19살이던 1999년, 동생 아르망도 조코라와 함께 ASEC 미모사스의 프로 계약을 제안받았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놀러간 해변에서 동생이 익사로 그만 세상을 떠나며, 영광스러운 날이 순식간에 비극적인 날로 변했다. 이후 2000년에 벨기에 프로리그 소속 헹크로 건너가 유럽 무대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헹크에서 뛰며 2001-02 벨기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2004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리그앙 소속 AS 생테티엔으로 이적, 2시즌간 리그 74경기에 출전했다.2.1.2. 토트넘 핫스퍼 시절
2006 독일 월드컵에서의 퍼포먼스를 통해 820만 파운드(한화 약 120억)에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했다. 이적 후 2006년 10월, UEFA 컵 베식타스 JK와의 조별리그 경기를 앞두고 말라리아에 걸려 2주간 경기에 나서지 못하다 이후 복귀했다.2007-08 시즌에는 리그컵에서 우승하며 토트넘에게 9년만의 메이저 대회 우승 타이틀을 안겨주었다. 2008-09 리그컵에서도 결승에 올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연장까지 120분 풀타임을 뛰었으나, 승부차기에서 4-1로 패하며 2시즌 연속 리그컵 우승에는 실패했다. 2008-09 시즌을 앞두고 4년 재계약을 하며 계약을 2012년 여름까지 연장했으나, 2009년 1월 온두라스 출신 수비형 미드필더 윌슨 팔라시오스가 위건 애슬레틱에서 영입되자 출전 시간이 점차 줄어들다가 곧 주전 자리를 완전히 내주게 되었고, 나머지 경기들에서 단 3번의 풀타임밖에 뛰지 못했다. 3월 15일에는 본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라이트백으로 선발 출전해 당시 절정의 폼을 보여주던
2.1.3. 세비야 시절
2009년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고, 프리메라 리가의 세비야와 3천만 유로의 바이아웃 조항을 넣고 미공개 이적료로 이적하였다. 2009-10 시즌 프리메라 리가 1라운드 발렌시아 CF와의 경기에서 전반 21분에 부상당한 같은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로마릭을 대신하여 경기에 투입, 데뷔전을 치렀다. 팀은 2대 0으로 패배했다. 세비야와 프리메라 리가에서의 첫번째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주축으로 뛰며 팀의 리그 4위와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크게 일조하였다. 리그에서의 활약뿐만 아니라 코파 델 레이에서도 2010 UEFA 유로파 리그 우승팀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캄프 누에서 열린 결승에서 2대0으로 꺾고 5번째 우승 타이틀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2.1.4. 전성기에서 내려온 이후
2011-12 시즌을 앞두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5백만 유로(한화 약 65억원)의 이적료와, 연봉 162만 5천유로(한화 약 21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4년 계약을 맺고 터키 쉬페르 리그의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했다. 2011년 9월 10일 마니사스포르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논란도 있었는데, 2012년 4월 15일 페네르바체와의 2대0으로 진 경기에서 상대 팀 선수였던 엠레 벨로조글루에게 인종차별적 모욕을 당한 것이다. 조코라는 엠레가 경기 도중 "X같은 깜둥이새끼"라는 인종차별적 모욕을 본인에게 퍼부었다고 밝혔다. 이 일로 엠레는 터키축구협회로부터 2경기 출장 정지를 받았으나, 그래도 도저히 분이 안 풀렸던지 한 달 뒤인 5월 6일에 다시 만나서 대놓고 사타구니를 발로 깠다...!!
2.2. 국가대표 경력
무려 디디에 드록바, 야야 투레를 제치고 코트디부아르의 A매치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한 선수.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로서 총 123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고, 이는 코트디부아르 역사상 A매치 최다 출장 기록이다. 123경기를 뛰며 기록한 유일한 1골은 2008년 6월 22일, 남아공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 보츠와나를 상대로 4대0으로 이긴 경기에서 기록한 것이다.
15년 동안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로 뛰며, 코트디부아르의 역사상 첫 월드컵 출전이었던 2006년 독일 월드컵을 포함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014년 브라질 월드컵등 총 3차례의 월드컵에 출전했다.
안타깝게도 코트디부아르가 2006년에는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2010년에는 브라질, 포르투갈, 북한과 한조에 편성되는 이른바 죽음의 조에 들어가게 되어 안타깝게 조별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2] 특히 남아공 월드컵 당시 조별리그 1차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는 본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센터백자리에서 뛰며 0대0 무승부를 이끌었다.
가봉과 적도 기니에서 열린 2012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는 코트디부아르가 우승을 하지 못하면 국가대표에서 은퇴할 수도 있다고 밝혔는데, 결승에서 잠비아에게 승부차기 끝에 8대 7로 패배하며 은퇴를 했다. 하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감독 사브리 라무시가 월드컵 최종 명단에 포함시키면서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뛰었다. 그러다 2014년 9월 8일, 다시 두번째 국가대표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A매치 골 기록
날짜 | 장소 | 상대팀 | 결과 | 대회 이름 |
2008.6.22 | 아비장 | 보츠와나 | 4대0승 |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 |
[1]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자.
[2]
2006년에는 아르헨티나, 네덜란드에 밀려, 2010년에는 브라질, 포르투갈에 밀려 두 대회 모두 3위를 차지했다.
분류
- 1980년 출생
- 1999년 데뷔
- 2017년 은퇴
- 아비장 출신 인물
- 코트디부아르의 남자 축구 선수
- ASEC 미모사/은퇴, 이적
- KRC 헹크/은퇴, 이적
- AS 생테티엔/은퇴, 이적
- 토트넘 홋스퍼 FC/은퇴, 이적
- 세비야 FC/은퇴, 이적
- 트라브존스포르/은퇴, 이적
- 노스이스트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
- 코트디부아르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가 선수
- 200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말리 참가 선수
- 2006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이집트 참가 선수
- 2008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가나 참가 선수
- 2010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앙골라 참가 선수
- 201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적도기니/가봉 참가 선수
- 2013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