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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09:37:36

등애/기타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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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사 연의를 제외한 다른 창작물에서 등장하는 등애를 다루는 항목.

2. 게임

2.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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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영걸전 시리즈

정규 시리즈 중에서는 삼국지 공명전에서만 등장한다. 군사계로 등장하는데, 라이벌 강유와 함곡관에서 동시에 퇴각하는 일기토 이벤트가 있으나 정작 최종 전투에서는 장포에게 죽는다. 이때 유언이 "으, 이젠 끝인가..."

파일:조조전 온라인 등애.png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는 '등후사재의 패' 대표인물은 물론, 단편 연의인 등애전의 주인공으로써 비중이 크게 올랐다. 병과는 산악기병이며, 그의 대사 중에는 ' 그곳에 산이 있잖소?' 등 산악인의 면모가 심히 풍기는 캐릭터가 됐다. 좋게 평가된 입장이라서인지 말더듬이로는 안 나온다.[1] 장수로서의 성능은 비록 섬멸전 대세는 아니지만 특수공격면역이라는 경쟁력 있는 특성을 가져 초진창 등으로 부족한 공격력만 보완해준다면 나름대로의 입지는 있다. 등애전 연의는 등애 생애의 후반부 위주로 촉한의 노장 강유와의 대결 내용이 주가 되며,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대사가 많아 스토리는 탄탄하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유명한 등산 에피소드는 가장 중요한 산을 넘는 부분이 단순히 내레이션으로 대체해 아쉽다는 평이 있다. 금전 장수인 문앙이 등애전 필수 참전장수로 나오는데 상술이란 비판도 있었다. 업적보상이나 3인장보상 등 문앙 등용금전 고려해도 깨는 게 이득이긴 하지만, 문앙이 등애와 스토리적으로 엮일 부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2.3. 진삼국무쌍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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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토탈 워: 삼국

원 게임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Total Unique Pack 적용 시 고유 감시자 캐릭터로 등장한다.

3. 만화

3.1. 삼국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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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이였다는 고증을 살리고 있으며 산악 영화 클리프행어의 게이브 월커를 패러디하였다. 산악인 아이덴티티 때문에 해당 캐릭터를 선택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인물 설명을 봤을 때는 게이브 역을 맡았던 실베스터 스탤론의 패러디도 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등애를 가난한 집안 출신이지만 밑바닥부터 한단계씩 밟고 올라온 의지의 사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실베스터 스탤론 역시 등애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집안 출신에 언어장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고 밑바닥부터 올라와 대성한 배우인만큼, 정말 적절한 패러디가 아닐 수 없다.

실베스터 스탤론을 모델로 삼은 캐릭터인 만큼 게이브 월커 뿐만 아니라 람보, 록키 발보아 등으로 패러디 되기도 한다.

국산 전투 편에서 서질과 함께 진태의 부장으로 처음 등장. 진태 등과 함께 국성을 성공적으로 공략해냈으며, 강유가 퇴각하는 척하며 요화를 보내 기습하려고 했을 때는 그걸 예측하고 강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요화가 머리를 써서 강을 건너는 척만 하고 동쪽의 조성을 공략하려 했지만 등애는 거기까지 읽고 미리 조성에 가서 기다리고 있던 것으로 묘사됐다.

적도 전투 편에서 여남 방면으로 이동해 있었다고 언급되었고 낙가 전투 편에서 실제로 연주자사가 되어 있던 것으로 묘사된다. 낙가 전투 편에서는 난을 일으킨 관구검의 격서를 받자마자 관구검 일파가 낙가를 노릴 것을 예측하여 진작에 달려와 낙가를 확보해 놨다고 묘사됐다. 이후 낙가성 밖에 있던 사마사의 진영이 문앙으로 인해 난장판이 되자 성 안에 주재하던 등애가 신속하게 대응에 나서 문흠 일당을 낙가에서 퇴각하게 만들었다고 묘사되었다.

고관 전투 편에서는 안서장군으로 승진하고 다시 옹주로 발령받으며 서량으로 돌아왔다.[2] 등애는 진태군에 합류하자마자 바로 종제로 물러난 강유를 칠 것을 제의했다. 주변에서는 아군의 전력이 보강된 이상 강유를 신경쓸 필요가 그리 크진 않을 거라 하며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지만 등애는 강유의 베테랑 병사들과는 달리 아군의 지원군은 전투 경험이 많지 않고, 또한 강유는 아군이 지켜야 할 많은 거점 중 하나를 골라잡아 공격해올 수 있으니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56년경 적도 방면의 방비가 튼튼하단 걸 깨달은 강유가 기산으로 돌아서 공격하려 했지만 등애는 강유의 행보를 예측하였기에 기산을 미리 점거해 놓았다. 강유는 기산쪽이 막히자 동정을 거쳐 남안으로 더 돌아서 가려고 시도했고 그를 위해 무성산을 넘으려 했지만 등애는 또 무성산에서 강유를 기다리고 있던 것으로 묘사했다. 이후 강유가 일이 꼬여서 퇴각하려 하자 퇴각하는 강유군을 단곡에서 따라잡아 큰 피해를 입히는데 성공했다.

수춘2 전투 편에서는 고관전투 이후 중앙으로 간 진태를 대신해 대촉방면 사령관이 된 것으로 묘사됐다.[3] 등애 본인은 중앙으로 불려간 진태를 두고 명문가 도련님은 출세 가도를 달린다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검각 전투 편에서는 262년경 공격을 들어온 강유를 박살내서 돌려보낸 적이 있었다고 언급되었다.

사마소가 촉 정벌을 준비할 당시, 등애는 촉 정벌에 회의적이었지만 사마소의 설득 끝에 대충 납득했고, 촉 정벌에 참여했다. 등애는 적도에서 출발해 강유가 지키는 답중 방면으로 움직였다. 강유가 등애만 막으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등애도 강유를 뚫어야 촉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강유를 집중공략하는 행보를 보였다. 등애는 제장들을 모아 놓고 무턱대로 힘으로 공략했다간 큰코다칠 거라고 경고했고, 파상공격을 선택, 지속적으로 공격해 조금씩 상대를 쇠하게 만들어 잡는 작전을 시행했다. 실제로 등애의 작전대로 왕기, 견홍, 양흔이 차례로 강유를 압박해서 몰아붙였지만, 요화의 지원과 강유의 뒤를 잡았던 제갈서의 삽질이 겹치면서 강유를 잡는 데는 실패했다.

제갈서가 강유를 놓친 일을 사과하자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 넘기고 자기를 따라올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제갈서가 당초 임무대로 강유의 뒤를 쫓아 검각에 가겠다고 하자 힘 낭비라면서 한심해했고, 이에 제갈서가 대안이 있냐고 묻자 당당하게 산을 넘겠다고 말했다. 그게 더 쓸데없는 힘낭비네욧!!!

등애는 본인이 제갈서에게 말했듯 검각 돌파는 애시당초 불가능이라고 여겼기에 산을 넘는 데 가능성을 걸고 촉 정벌에 나섰다고 묘사되었다. 수하들과 험준한 음평 산길을 매달리고 굴러가며 넘어갔고, 산에서 내려올 무렵에는 전군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는데, 딱 도착하고 보니 내려가는 길목에 촉의 관문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야생 짐승조차 지나다니지 않는 험한 산중턱에 관문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기에[4] 등애는 털썩 무릎을 꿇고 좌절했다.

그러나 등애는 머리를 싸매고 있어 봐야 체력과 식량만 소모될 뿐이라고 생각하여 빠르게 정신을 추스르고 휘하 장병들에게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설 수는 없다고 말하며 적의 관문을 공격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 와중에 전속이 개죽음 당하긴 싫다며 명령을 거부하려 들자 진짜 개죽음이 뭔지 보여 주겠다며 전속의 목을 베려 하기도 했으며 이에 전속은 도망쳤다. 따지고 보면 모두 개죽음을 당할 거라는 전속의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로 공격에 들어간 것이었는데... 정작 관문을 수비하던 적장 마막이 아무런 저항없이 관문을 열고 항복해버리자 벙찐 모습을 보였다.

검각 전투 후반부부터 등애에게 콧수염이 생겼다.

강유관에서 재정비를 마친 등애군은 바로 덕양으로 향했고, 빠른 움직임으로 평지에 내려와서 늦게 영격을 나온 제갈첨군을 박살냈다. 제갈첨이 부성을 버린 뒤에는 전술의 폭이 넓어졌다고 좋아하며 견홍과 양흔을 보내 부성을 접수하게 한 뒤 자신은 사찬, 등충과 함께 면죽 공략에 나선다. 거센 저항에 사찬과 등충이 공략에 실패하자 이들의 목을 베려 했으나, 등충의 탄원으로 다시 한 번 기회를 줬고, 이후 면죽까지 함락시키는데 성공했다. 이후 유선이 등애에게 투항 의사를 밝혔고, 등애는 당연히 쌍수들고 환영했다. 등애 본인은 살다살다 이렇게 로또가 연속으로 맞는 경우도 있다며 좋아했다.[5]

성도에 도착한 등애는 유선의 항복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였고, 사찬이 황호를 잡아오자 교활하기로 유명한 인물이라며 사형을 명하기도 했다.[6] 등애는 촉 정벌의 일등 공신이 되어 태위로 승진했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이제 막 전쟁이 끝난 촉에서 새로운 전운이 감돌았다고 나레이션으로 서술되었다.

성도 전투 편에서는 등애와 종회의 차이점이 잠깐 묘사된다. 분명 여러 가지로 알찬 쪽은 등애였음에도 굉장히 있어보이는 귀족 자제 종회와는 달리 등애는 태도와 말투가 세련되지 못했기에 이전 촉 관원들에게서 비웃음을 샀다고 묘사됐다.

그리고 촉 멸망 이후 밑바닥에서 올라온 사람이 성공 후 곧잘 보여주는 독단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등애는 촉 멸망 이후 여세를 몰아 오도 밀어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프로젝트를 폭풍처럼 쏟아내며 서두르는 모습을 보였고, 이에 사마소가 위관으로 하여금 일에는 절차가 있으니 좀 기다리라는 말을 전하자 크게 답답해하며 일에는 때가 있어 무작정 기다릴 수 없고, 국가 대계를 위해 움직이는데 눈치 같은 건 보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등애를 제거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종회에 의해 꼬투리를 잡히게 되었고, 결국 위관에 의해 체포되는 신세가 된다.

이후 성도 전투(7)에서 낙양으로 압송되던 도중 사찬의 도움을 받아 풀려나게 되었고 성도로 향하지만 그 직후 위관의 명을 받은 전속이 이끄는 궁병에게 화살을 맞고 사찬, 등충과 함께 죽게 된다. 임팩트 있게 최후를 맞이한 강유와는 대조적으로 허무하게 최후를 묘사했다.

3.2.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파일:전략등애.png
촉한멸망전 부분에서만 등장한다. 챙이 넓은 투구를 쓰고 나오는데 이는 코에이 삼국지에 반영된다. 콧수염이 난 우직한 이미지의 중년 장수의 외모이다.

연의에 비해 행보가 많이 미화되었는데, 종회와의 대립도 거의 등장하지 않고 음평 공격에 대해서 단순한 의견 차이만 발생했을 뿐 '정 뜻이 그렇다면 혼자서 한 번 해보시오'라는 허락을 종회에게 받고 공격을 행하는 것이다.

음평 공격 중 큰 절벽을 만나자 '이 곳만 넘으면 강유성이다. 만약 성공하여 성도로 쳐들어가면 1등 공을 세우는 것이다!'라고 병사들을 고무시키고, 병사들도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다. 한번 해 보자!'라며 사기를 올려서 끝내 극복한다. 이후 성도를 공격해서 항복을 받아내는 장면으로 끝으로 퇴장한다.

3.3. 화봉요원

무려 13세의 나이로 등장했다. 등장시점도 적벽대전. 태사자의 진영에 침입한 난민 꼬마아이로 등장했고 태사자를 존경했다면서 알랑방귀를 뀌다가, 태사자를 급습한다. 물론 태사자는 이를 손쉽게 막아내고, 뒤이어 장료까지 등장. 침입한 과정이 기가막힌데, 밧줄로 높은 절벽을 타고올라 온것. 미래의 등산왕의 자질을 충분히 보여줬다. 어린 나이에 훈련 받은 군인들도 죽이는 등, 벌써부터 싹수가 노란 모습을 보였다.
장료가 작품에서 비중도 높고 사마의와 적지않게 연결되어있는 만큼 등애가 사마의에게 거둬지게되는 연결다리가 될 수 있다.

3.4. 삼국지톡

눈은 나오지 않고 백발의 모색과 수염으로 등장했으나 명색이 주요인물임에도 종회 강유에게 살해 당함으로써 1회성 인물로 추락했다. 무적핑크의 역사왜곡으로 사마의의 후계자로 기록된 굴욕은 덤.

완결편 마지막화에서 회색머리와 회색눈을 가지고 있음이 나왔고 비교적 젊은 시절 흉노를 둘로 나누자 제안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와중에 정사에서 나온 대로의 사마사 시기가 아닌 사마소 시기로 나온다

4. 영상 매체

4.1. 84부작 삼국지

이 작품이 강유의 북벌과 촉한 공략전을 어느정도 분량 있게 다루었던 만큼 비중있게 등장하며 역사 그대로 노장으로 묘사된다. 정사와 연의의 모습과는 달리 자신의 과거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런 처지에서 자수성가를 한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대범한 모습을 보여줘 자신을 목동이라 비하하는 촉한군의 도발을 쿨하게 넘겨버리기도 한다.[7] 촉한 정복 이후 종회의 모함으로 붙들리면서 퇴장하며 최후는 해설로 간단히 언급된다.

삼국지연의가 대중적으로 오장원 전투 이후로는 존재감이 없는 만큼 생소한 인물이어서 그런지 한국어 자막판에 이름이 등예로 잘못 나오기도 했다.[8]

4.2. 대군사 사마의

조세를 걷는 하급관리로 첫 등장한다.

조비의 의중에 따라 사마의 조진을 비롯한 종친들과 대립하는 형국이 되자, 이를 막으려는 아버지 사마방의 의도에 따라 낙향하려는 도중에 등장한다.

너무나 당연한듯이 비리를 저지르려는 동료들을 말리다가 몰매를 맞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마의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다시 마음을 돌려 낙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며, 그때 등애를 주목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후일 둔전제를 주제로 한 글로 구품중정제를 통한 관리 모집에 응시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둔전제를 맡아 수행하게 되면서 조홍, 조진 등 조씨 일족이 보유하고 있는 초현을 둔전제의 시작으로 잡아 일문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5. 기타

5.1. 반삼국지

시대 배경이 제갈량이 막 유비에게 출사한 시기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종회와 함께 등장한다.[9] 종회와 함께 콤비로 어울리며, 작가가 위나라의 젊은 인재들이라고 칭찬하는 구절도 나오지만 촉나라의 승리를 띄워주는 들러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촉나라와의 싸움을 계속한다. 그러나 사마의 등이 동아에서 폭사한 이후, 관도에서 황충 우금을 포로로 잡아서 보여주자 우금에게 속으로 사과하면서 화살을 날려서 우금을 사살한 후,[10] 맞서 싸우려고 하지만 촉장이 쏜 화살을 뺨에 맞고 이어서 황충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등애의 죽음 직후 나온 작가의 평에서는 등애는 이제 다시는 몰래 음평을 건널 수가 없게 되었다고 했다.


[1] 정작 말더듬이라는 근거가 딱히 없는 육항이 말더듬이로 나온다. [2] 이 때 깨알같이 등애를 못 알아본 진태의 부하 한 명이 등애를 수상한 사람 취급하는 바람에 등짝에 물세례를 맞는 개그씬을 찍기도 했다. 그 부하는 등애에게 그대로 제압당해 살해당할 뻔한 걸 진태가 새로 온 부하놈이 잘 모르고 결례를 범했다고 사과하며 간신히 구출했다(...) [3] 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등애는 실질적 총사령관은 맞되 진태의 직위를 이어받은 건 아니었다. 정서장군직을 이어받은 인물은 낙하산으로 꽂힌 사마망. [4] 이 때 배경의 달에 익숙한 쉼표 문양이 묘사되어 있다. [5] 등애의 촉 정벌은 그야말로 행운의 연속이었다. 산짐승도 안 다닐 길에 떡하니 관문이 있는 걸 보고 좌절했지만 운 좋게 관문을 지키던 적장이 바로 항복했고, 덕양을 치고들어갔을 때는 운 좋게 적의 영격이 늦어져 평지에서 싸워 기세를 잡았으며, 또 운 좋게 적이 부성을 버리는 바람에 적진 한복판에 성이 생겼으며, 마지막으로 유선이 빠르게 항복하며 촉한 정벌의 최고 공로자가 되기까지 했다. [6] 다만 황호는 사찬에게 뇌물을 먹여 살아남았다. [7] 현대에는 집안 배경보다 스스로의 능력을 통해 출세하는 자수성가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일이 많지만, 전근대사회에서는 혈통을 중시했기에 누군가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할때 꼭 천한 신분이었다는걸 강조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밑바닥부터 시작해 성공한 이들도 자신의 태생을 신비롭게 미화하고 조상을 유명 가문 출신으로 둔갑시키는 경우가 흔할 정도로 과거와 현재의 인식이 다르기에, 본 작품에서도 이런 차이가 드러난다. [8] 다만 등애 항목을 보면 이름을 '애'로 읽는 게 맞는지, '예'로 읽는 게 맞는지 논란이 있다. [9] 더 웃긴건 등애의 아들 등충도 등장한다. 등충은 아비보다 먼저 마초에게 찔려서 저 세상으로 간다. [10] 아군의 사기를 잃지 않기 위해서 우금을 죽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