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17:00:30

동일원

1. 개요2. 생애

1. 개요

董一元, 생몰년 미상

명나라의 장수. 보바이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지만, 사천왜성 전투에서 패했다.

2. 생애

1564년 계진유격장군으로 있던 중 토만, 흑석탄 등이 침공하자 총병관 호진, 동일원이 성벽에 기대어 저항하여 적군이 쳐들어오지 못하다가 명의 원군이 올 때 도망가자 명군은 여세를 몰아 추격하여 70여 위급을 참수하였으며, 그 후 갈대골에서 적군을 대파하고 370여 명을 참수하였는데, 동일원이 가장 큰 공로를 인정받았다.

융경 원년(1567년) 9월, 명이 곤봉 절벽에서 적군을 격파하고, 또 동일원의 공로로 다시 2계급으로 특진한 뒤 부총병으로 오르고, 고북구에 주둔하였다. 융경 4년(1570년) 2월, 공로로 북구 부총병으로 진급했고 동년 11월에 총병으로 진급한다.

만력 11년(1583년) 도독첨사(都佥事的事)로 창평총병관(昌平總兵官)을 지냈으며, 곧 선부(宣府)로 옮겼고 만력 13년(1585년) 12월에는 보정(保定) 총병서(總兵署) 도독(都升) 동지(同知)에 의해 진삭장군, 선부총병관에 올랐다. 만력 15년(1587년) 8월 계진총병관으로 자리를 옮겼다.오래 후, 또 탄핵되어 파면되자, 조하 경략은 동일원이 맡았고, 그는 서녕에서 군사를 훈련시켰다. 대락적진이 변강을 침범하자 이를 서천에서 영격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곧 부총병으로 영하 수비를 도운 뒤, 보바이의 난 진압에 힘쓴다.

1597년에는 정유재란에 참여하여 총독 형개의 소속에 속한다.

이후 사로병진작전에 참여하여 사천왜성 공략을 맡았고, 진주를 선취하는 등 시마즈 요시히로를 방비하고 사천왜성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1598년 사천왜성에서 동일원의 군대에서 사고가 일어나자, 이를 틈탄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패하여 진주로 돌아온다. 이를 들은 만력제에 의해 강등된다. 때마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왜구가 퇴각하자 시마즈 요시히로는 진린과 이순신에게 대패하였고, 원관급으로 복귀하여 만력제에게 은화를 하사받는다.

1599년 그의 반사가 조로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