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에요노가타( 스겐인) 소생
정실 | 오에요노가타(於江與の方)[1], 1573~1626 | |||||
자녀 | 장녀 | 이름 | 센히메(千姬)[2] 1597~1666 | |||
차녀 | 이름 | 타마히메(珠姬)[3]1599~1622 | ||||
3녀 | 이름 | 카츠히메(勝姬)[4]1601~1672 | ||||
4녀 | 이름 | 하츠히메(初姬)[5]1602~1630 | ||||
차남 | 이름 |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德川家光)1604~1651 | ||||
삼남 | 이름 | 도쿠가와 타다나가(德川忠長)1606~1634 | ||||
5녀 | 이름 | 고미즈노오 덴노의 황후 도쿠가와 마사코(德川和子)[6]1607~1678 |
2. 오시즈노가타 소생
측실 | 오시즈노가타(お靜の方), 1584~1635 | ||||||
자녀 | 4남 | 이름 | 아이즈 번주 호시나 마사유키(保科正之) 1611~1673 |
3. 이름 불명의 시녀
시녀 | 이름 불명, 출생-사망 년대 불명 | ||||||
자녀 | 장남 | 이름 | 도쿠가와 나가마루(德川長丸) 1601~1602 [7] |
[1]
그녀의 친정어머니
오이치는 히데타다에게는
장모이다. 그리고 아자이 나가마사는 장인 어른...
[2]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시집 갔다가 도요토미 멸망 이후
혼다 타다카츠의 손자인 혼다 타다토키에게 시집 갔으나 다시 과부가 된 뒤 출가했다.
[3]
마에다 토시이에의 아들인 마에다 토시츠네에게 시집 갔다. 남편과 매우 사이가 좋았으나(심지어 토시츠네가 에도로 올라갔을 때 아버지 히데타다에게 토시츠네가 없으면 외로우니까 빨리 돌려보내달라고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 없다더니)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돌아왔다가 마에다 가에 바쿠후의 정보가 새어 나갈 것을 염려한 유모가 몰래 남편과의 사이를 방해했고, 남편의 사랑이 식었다고 오해한 타마히메는 실의에 잠겨 죽고 만다. 이를 알게 된 토시츠네는 격노해서 유모를 잔인하게 죽였다고 한다.
[4]
유키 히데야스의 아들로 사촌 오빠인 마츠다이라 타다나오에게 시집 갔다. 정이 깊지 않았는지 후에 타다나오가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임산부의 배를 가르는 등 난폭한 행동으로 인해 유배 갔을 때도 따라가지 않고 에도에서 자식들과 함께 살았다. 어머니를 닮아 매우 당찬 여성이었다고 한다.
[5]
이름이 같은 이모 하츠히메의 의붓아들인 쿄고쿠 타다타카에게 시집 간다.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그녀가 죽어갈 때도 타다타카는 스모를 관람하고 있었다고 한다.(...)
[6]
그녀의 입궁 때문에 고미즈노오 덴노가 총애하던 후궁이 쫓겨나는 등 파란이 많았지만 부부 사이는 좋았다고 한다. 그녀의 딸이 고미즈노오 덴노의 뒤를 이어 메이쇼 덴노로 즉위한다. 참고로 황실과의 통혼을 앞장서서 중재한 사람이 바로 전국시대의 장군
도도 다카토라.
[7]
히데타다에게는 첫 아들이라 자신의 아명 '나가마츠마루'를 따서 나가마루라 이름지으며 기뻐했지만 불행히도 1년만에 사망했다. 여기에는 딸만 줄줄이 낳고 아들을 아직 낳지 못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있던 오에요가 남의 자식에게 차기 쇼군 자리를 빼앗길까봐 독살했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