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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의 등장인물이자 원래 역사에서라면 에도 막부의 15대 쇼군이자 마지막 쇼군. 그리고 일본 역사상 최후의 정이대장군이다.2. 행적
일본 에도 막부의 15대 쇼군. 제1차 조청전쟁에 앞서 갓 즉위한 조선 국왕이 청나라를 상대하기 위해 일본과 서양 열강들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 조선통신사로 일본으로 간 박규수와 접견하는 것으로 첫 등장한다.원래는 조선의 급성장이 막부에 힘을 실어주자 일부러 조기에 패하는 것까지 계획한 것[1]을 철회하고 무진전쟁의 개전을 결의한다. 프랑스의 협조로 영국이 존왕파를 지원하지 못하게 막고 교토에서 치열한 혈투를 벌여 승리하고 황궁을 손에 넣으나, 존왕파가 항복하지 않아 전쟁의 장기화가 기정사실되자 분노로 이를 간다. 의용군과 다른 번군이 모이자 압도적인 병력으로 삿쵸 번을 점령하지만 질적으로 우수한 삿쵸 번군이 근대화가 덜 된 막부 본군 이외의 부대에 큰 피해를 입히자 막부 본군을 보내서 그들을 토벌한다.
그 후 다른 두 번에 항복을 제안하나 사츠마번이 영국의 후원을 업고 규슈를 장악해 극렬히 저항하자 어쩔 수 없이 거액의 예산을 들여 원정을 시작한다. 해전에서 승리하고 군을 상륙시켰지만 자기 직속부하들을 제외한 군대는 질적 수준이 낮아서 매번 패전하자 분노해서 그들의 군권을 압수해서 통합한 다음에야 승리한다. 그러나 이때 사츠마번의 항복을 무시하고 뿌리를 뽑을 작정을 했는데 이에 사츠마번 잔당이 류큐로 도망갔다가 그만 대한제국과 영국이 개입할 여지를 주고만다.
이에 최악의 경우 일본의 멸망, 최선이라고 해도 영토를 할양하고 식민지화될 거라고 자포자기해서 대한제국과의 협상에 나섰지만, 이형이 '최소한의 주권은 남겨주겠다.' 라고 하자 반은 진심으로 대한제국 만세를 외치며 환호한다. 아직 마인드가 21세기에 가까웠던 이형은 되려 미친 놈인가 싶어서 식겁했다가 요시노부가 상당히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것을 알고 그를 인정한다.[2] 명목상의 주권을 남기고 영토 할양도 요구하지 않았단 말은 적어도 앞으로의 국제 정세에 따라 수십년이 지나면 해방될 수도 있단 뜻이다.
19세기적 식민지 vs 21세기적 FTA수준의 차이로 더 쉽게 설명하면 팔다리 잘리고 장기 털리기 vs 피는 뽑겠지만 먹여살려주고 건강관리도 해주기나 다름없는 만큼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첫 번째 회담에서 막부군으로 갈아 엎어버린 관서와 큐슈 등 옛 삿쵸 동맹의 세력권을 재건하기 위한 공사에 대량의 인력이 필요했는데, 전 삿쵸 동맹권의 국민들은 믿을 수 없다면서 친 막부 세력을 양성하기 위해 유구 왕국의 이름으로 강남 지역의 난민 일부를 수용하는 계획을 대한제국에게 허가 받는다. 믿을만한 관동지역 백성들을 이주시키기엔 아깝고하니 아예 이질적인 중국 백성들을 막부의 지원으로 친 막부 백성으로 만들어서 이주시켜서 관서, 큐슈 백성들이 그들과 다투느라 막부에 반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후 본격적인 천명대전에는 동원되지 않았기에 여태까지 이형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에 아쉬워하면서도, 이렇듯이 일본이 대한에게 경계받을 정도의 가능성(= 지금의 일본이 그만큼 조선에게 위협적이라는 것)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힘을 길러 후일을 기약하자는 생각으로 아시아의 2인자를 노리고 나라를 운영한다. 일본 의회에 교토의 귀족들과 각 지방의 다이묘들을 끌어들였기에 의회가 있으나 마나에 가까운 대한제국에 비하면 의회가 미약하게나마 힘이 있긴 하지만, 무진전쟁으로 삿쵸 동맹이 박살난 이후로도 여전히 각 지역의 실권을 잡고 있는 지방의 다이묘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기 싫어서 순순히 봉토를 내놓으라는 말을 안 듣고 반항하느라 중앙집권화도 제대로 안 되고 있는 판. 개화도 겉으로만 되고 있는 척 정도라 일본은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태다.[3] 요시노부는 이에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와 독대한 자리에서 신센구미의 배치에 대해서 묻고, 배치가 이미 끝났다는 보고를 듣자 "참으로 흉흉한 세상이야. 한 번의 다이묘가 일개 낭인 따위의 검에 베여 죽는 세상이라니." 라며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신센구미를 방첩대로 활용하여 이제는 없는 유신지사들 대신 말 안 듣고 반항하는 지방 다이묘들을
그러나 대한제국과 러시아 제국의 캄차카 거래로 인해 막대한 빚을 떠맡게 되었다. 하지만 도쿠가와는 빚을 졌다는 내용은 숨겨두고, 말 한마디로 막대한 땅을 얻었다고 일본 내부에 선포하면서 지지도를 끌어올린다. 이후 자신의 직할령만으로는 감당이 안되는 빚을 처리하기 위해 수도를 교토에서 에도로 옮긴 후 모든 다이묘를 에도를 불러 그들의 토지와 호적을 반환하게하고 지번사로 임명하며[4] 미마와리구미와 신센구미를 합한 국가헌병대를 이용하여 반발을 잠재우는 등 일본의 숙원이었던 중앙집권화를 서둘러 진행해 이루어냈고 에도에 유폐된 덴노를 대신한 진정한 일본의 통치자가 된다. 이후 박규수의 진언으로 이형이 극동보건기구를 일본에 설치하면서 일본에서의 입지가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이뻐서 그런건 당연히 아니고 명목상으로 아시아의 연합을 내거는데 모든 이권을 대한제국이 독점하면 반발이 나올테니 이미 이권을 챙길대로 챙기고 일본에게 적당한 떡고물을 챙겨서 2인자에 만족하여 누리게 하려는 샘이다.
3. 기타
- 폭군고종 작품 내의 지배자들 중에서 시대에 따른 변화를 가장 극심하게 체감하는 인물이다. 애당초 첫 국제사회 등판 당시 10대~20대 초반이고 애당초 빙의자라 연령대를 잴 수 없는 이형에 비해, 요시노부는 1800년대 말기부터 1900년대 중순까지 국부 자리에 있으면서 시대상의 극변을 체감하고 대처해왔기 때문. 때문에 19세기 말~20세기 초반까지는 나름 지혜롭게 대처하는 인물이던 그가[5] 20세기가 어느정도 지난 후에는 아주 조약기구 내에서 뒤쳐지기 시작하는 걸 체감하고도 무사와 영주의 권위를 포기하지 못해 일본 내 혁명을 유발해 일본을 극심한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그와 동년배의 지도자들이전 청의 공친왕, 몽골의 셍게링첸은 20세기 초가 오기 전에 노쇠해 죽은 데다가 생전에 조선에 고국의 안위와 미래를 보장받았기에 그런 팔자는 겪지 않았다.
[1]
요시노부는 향후 세계정세 변화에는 존왕파의 시각이 맞다고 보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세력이 막부군을 능가할 기세를 보이자 일부러 패전해서 일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발전을 꾀하기를 바랬던 것. 그러나 조선의 급성장으로 막부는 세력을 키워 존왕파에게 우위를 점하자 역으로 존왕파를 빠르게 정리해버리기로 했다.
[2]
그러니까 요시노부는 나라가 망하는거 아닌가 했다가 피만 쪽쪽 뽑히는 선에서 끝났으니 다행이라고 만세를 부른 것이고 이형은 애당초 일본 모가지를 날릴 생각도 없었는데 난데없이 국가원수라는 사람이 자국 피뽑히는거에 만세를 불렀으니 이상하게 여기는 것. 허나 시대를 감안하면 이형이 조금 판단을 잘못 내린거다. 과거는 오늘날과는 달리 외교에 있어서 좀 극단적인 면이 강했기 때문. 당장에 현실의 러시아가 일으킨
명분없는 침략 전쟁도 힘의 논리가 완벽하게 지배하던 제국주의 시대라면 어느정도 용인될 수도 있을 전쟁이겠지만 그런 논리가 예전보다 안 먹히는 21세기에 벌어져서 러시아는 자업자득으로 도적, 학살자, 도살자라고 대차게 욕을 먹고 있다.
[3]
일본에서 유일하게 통일된 거라고는 내전 기간 동안 다이묘들의 사병들이 삽질 벌이는 거에 빡쳐서 회수한 군권 뿐이고, 그거 말고는 지방별로 세수도 행정도 법률도 죄다 따로국밥이라고 한다.
[4]
독립된 공왕이었던 다이묘들은 조정을 대신하여 번을 다스리는 지방관리로 격하되었다.
[5]
무진전쟁과 대한과의 외교에서 늘상 최선의 대처를 했고, 때문에 이형도 일본에 빨대를 꽂는 이상의 대처는 못했다. 그 빨대도 일본에게는 필요한 수준이었고 요시노부는 늘 자신의 지도권을 지킬 수 있었다. 덕분에 일본은 범아시아 조약기구가 형성되고도 초반부터 2인자였고 초국이 발전한 후에도 그리 뒤쳐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