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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10:57:37

더 퍼시픽/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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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미 해병대 제1사단 1연대 2대대3. 미 해병대 제1사단 7연대 1대대4. 미 해병대 제1사단 5연대 3대대5. 미 해병대 제5사단 27연대 1대대6. 기타 등장인물

1. 개요

매편 초반부에서 밴드 오브 브라더스처럼 참전용사들이 회고하는 방식으로 인터뷰를 하며, 주인공들 역시 모두 실존인물이다. 더 퍼시픽의 주연급 실존인물들은 이미 고인이기에 나오지 않는다. 인터뷰한 사람들은 전부 조연급 인물들로, 이것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보다 촬영 시기가 늦어서 주요 인물들이 이미 사망한 탓도 크다. 2차 세계대전의 생존자들은 2011년 시점에서 이미 나이대가 80~90세이기 때문. DVD나 블루레이로 감상하는 사람들은 메인 메뉴에서 "Play With Historical Background"를 선택해야 이 인터뷰를 볼 수 있다. 그냥 "Play"만 누르면 인터뷰 없이 본편 영상만 나온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1화에선 "남태평양으로 간 놈들은 열대 섬에서 요양하며 팔자 늘어졌겠네."라는 대사가 있는데 더 퍼시픽의 등장인물들이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스트랄하다.[1][2]

2. 미 해병대 제1사단 1연대 2대대

3. 미 해병대 제1사단 7연대 1대대

4. 미 해병대 제1사단 5연대 3대대

5. 미 해병대 제5사단 27연대 1대대

6. 기타 등장인물



[1] 등장인물 중 레키와 동료들 같은 경우는 42년도부터 44년까지 실전을 겪었다. 만일 부상당하지 않았다면 45년도까지 전투를 겪었을 것이다. 반면 BoB의 멤버들은 44년 디데이전까지 안락한 미 본토, 영국에서 안전하게 훈련만 받다가 1년 남짓만 싸웠다. [2] 고생이야 유럽 전선이나 태평양 전선이나 똑같았겠지만… 태평양 전쟁 문서에도 일부 설명되어 있듯이 그나마 같은 문화권이어서 정서도 통하고 당시 지구에서 가장 문명화된 곳이었던 유럽과 달리 태평양의 섬은 인간이 살기엔 너무나 척박한 곳이었다. 거기다가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광신적인 일본군과의 전투는 미군의 멘탈을 산산조각내기에 충분했다. 드라마 말미에도 유럽전선 참전 용사인 택시 기사가 귀향한 레키 일병에게 “우리는 그래도 파리나 런던에서 쉴 수 있었는데 그쪽은 진흙바닥에서 구르지 않았냐 정말 수고많았다.” 와 같은 멘트를 한다. [3] 이 때부터 레키가 코리건 중위를 미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4] 전시 공채 판매를 위해 미국으로 되돌아간 이후 미 해병 5사단 소속으로 다시 참전. [5] 그녀는 본디 캠프 펜들턴 해병대 기지 소속이지만 존 바실론과 깊은 연관이 있으므로 이 항목에 배치. [6] 워킹 데드(셰인 월시 역), 영화 퓨리의 그레이디 트래비스와 드라마《데어데블》시즌 2의 퍼니셔로 출연했다. [7] 풀러 중령은 1944년 2월에 대령으로 진급했으며 과달카날 전투시점에선 대대장이었다. 그가 연대장으로 있던 공식기록은 펠렐리우 전투부터 시작된다. 글로세스터 곶 전투에선 부연대장으로 연대의 차선임 장교로 있었긴 했다. [8] 별명인 '액액'이 DVD, 유진 슬레지가 쓴 태평양전쟁에서도 대공포라고 나오는데, AA(대공포)의 영어발음이 에이에이를 빠르게 발음하면 액액이라서, 대공포의 별명이기도 하다. 번역가가 액액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대공포라는 뜻인지, 아니면 할데인 대위가 하도 병사들에게 빼액대서 악악(소리지르는 의성어와 책 저작자인 슬레지가 그걸 비유한 표현)을 나타낸것인지 불분명하다. [9] 당시 미해병중대는 중대본부, 박격포반, 경기관총소대, 해병소대x3으로 편제되었는데 드라마상 묘사된 것으로 보면 힐빌리는 박격포반 및 경기관총소대를 이끌면서 화력지원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10] 과달카날에서 할데인 대위가 추천해 전시 임관되었다고 하는데, BOB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전시임관은 아무나 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보통은 현지임관시 병사들의 지휘를 위해서 타 부대로 전출시키는데 해당 부대에 계속 남은 것이 의외. [11] 실제로는 셔먼 탱크 위에서 일본군 저격수를 사냥하다가 총에 맞아 전사하였다. 사후 은성무공훈장(Silver star)이 추서되었다. [12] 정확히는 개폼을 잡으며 허세를 부렸다. 하지만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약실 확인도 안하고 총구를 다른 사람 방향으로 휘적대고 있었기에 자칫 사상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13] 미 해병 1사단 마크가 박힌 라이터이다. [14] 다만 '거니'라는 별명은 꼭 헤이니 중사 뿐만 아니라 거너리 서전트 계급 자체에 대한 약칭/별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작중 등장인물인 바실론 중사 역시 '거니'라고 불린다. 대중문화에서 유명한 또 다른 거니로는 하트먼 상사가 있다. [15] 특히 햄보다 펙이 더 심하게 당했다. [16] 실제로는 이때 빌 레이든은 다른 벙커를 공격하고 있었다고 한다. [17] 우베 볼 감독의 영화 램페이지의 주인공 '빌 윌리엄슨'을 맡은 바 있다. [18] 작중 비중있게 다뤄지는 다른 해병대원들과 달리 혼자만 징집병이라고 언급된다. 심지어 이 부분으로도 다른 대원들에게 까였다. [19] 아무리 아시아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미국인이라고 해도 오키나와 전투의 실상을 보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말이었다. 일본에게 강제로 합병당했던 당시 수많은 오키나와인들이 일본군에 의해 총알받이로 이용당하거나 자살을 강요받는 등 엄청난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20] 그 이후에 스내푸는 죽은 병사들에게서 새로 판초우의 한 벌 장만하라며 비꼬았지만, 이성을 잃고 끌려갈 때 스내푸는 그가 구멍 뚫린 판초우의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는걸 알게된다. 죄책감을 느꼈는지 판초우의를 꼭 쥐고 바라보는 묘사가 일품. [21] 아예 이름도 언급 안되는 보충병 2명이 두 사람의 빈자리를 매꾼 장면이 나온다. [22] 게다가 고참들이 햄은 괴롭히지도 않았다. [23] 사실 이건 슬레지를 구해준 것이었다. 당시 포로들을 관리하던 정보장교는 중위였고 본인은 소위였는데, 본인이 이녀석들(화기소대) 지휘관이라면서 포로들을 길가에서 치워 놓으라고 슬레지 대신 덤볐다. 직속 상관은 아니지만 상급자에게 개겼으니 하극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부하를 감싸준 것이며, 정보장교에게도 직속상관인 내가 눈앞에서 이정도로 처분했으니 한번 눈감아 달라고 명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슬레지를 갈군 것. 만약 제대로 감싸주지 않았다면 심한 경우 육군과 해병대간의 책임소재 공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24] 영화 퓨리의 주인공들이 소속된 그 부대다. [25] 그가 입은 육군 장교 정복엔 제2기갑사단 패치와 기갑병과 휘장, 소령계급장이 부착되어 있다. [26]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면서 군대 규모가 폭발적으로 팽창했고 장교 T/O도 아주 증가했다. 1939년 시점에서 18만명의 미육군은 진주만 기습이 있던 1941년 12월엔 190만명이었고, 전쟁이 끝날 1945년엔 800만명으로 팽창한다. 때문에 계급 특진의 혜택은 전쟁 전의 직업군인이었던 정규군(Regular Army of U.S)뿐만 아니라 전쟁 전엔 민간인으로서 군대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가 전시 체제에 임관한 장교(전시 육군체제: Army of the U.S)들도 혜택을 입는다. 물론 전쟁 초기에 자원한 장병들이 가장 많이 혜택을 입었고 전공도 탁월했음을 인정받은 경우에 가능한 요소이다. 이런 경우엔 전쟁 초기에 임관한 소위가 전시의 공적으로 전쟁 종전무렵엔 소령, 중령 계급과 그 직책을 20대 나이 후반에 도달하는 경우도 무척 흔했다! 전쟁이 끝나고 제대한 장병들은 전시계급이 인정됐지만 군대에 잔류한 이들은 평시계급및 직책 강등이 되었다. 물론 전장에서 세운 공훈이나 상황에 따라서 전시계급이 그대로 인정되는 경우도 흔했다. [27] 마지막 화에서 동생 유진에게 자신의 끔찍한 잠꼬대를 받아 주는 아내에게 미안한 심경을 토로했다. [28] 휘르트겐 숲 전투 아르덴 대공세에 투입되어 싸웠다. [29] 레키는 스텔라 앞으로 뛰어들어 "당신이 맘에 드니 같이 산책하고 싶다(Take a walk)"고 했는데, Take a walk는 미국 영어로는 '산책하다'이지만 당시 1940년대 호주에선 '꺼져주셔라(나 귀찮게 하지 말고 나가서 걷기나해라)'라고 정중하게(?) 까는 속어였다. 이걸 모르고 레키는 스텔라에게 "산책하자"며 데이트 신청을 했다가 주변 호주인들의 빈정거림과 웃음을 산다. 거기서 또다시 이상하게 굴었으면 턱도 없었겠지만, 레키는 곧바로 장난기를 거두고 "나는 외국인이라 이 곳의 관습을 모르기도 하고 무엇을 실수했는지 잘 모르겠지만..."이라며 진지하게 사과하고 데이트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그저 술 취한 미군인 줄 알았건만 여기서 스텔라가 약간 반전매력을 느낀 듯하다. 물론 당시 호주 사회상으로 미루어 기본적으로 자신들을 일본으로부터 막아준 미군에 대한 기본적 호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해당 에피소드 도입부의 참전용사 인터뷰에서도 "(호주남성들이 전부 북아프리카 전선으로 떠나서)그녀들은 오랫동안 남자들의 관심을 못받았어. 그때 우리(미군)가 나타난거지."라고 말하며 웃는다. [30] 예를 들어 스텔라의 어머니가 자신은 스미르냐라는 그리스의 오랜 마을에서 왔다고 하자, 그 곳은 터키가 침공한 곳 아니냐며 레키는 단박에 알아듣는다. 웬만해선 모를 사실이지만, 레키는 지역신문사 기자를 비롯해 글 쓰는 일을 했기에 아무래도 상식이 풍부한 덕택이었을 것이다. 본인도 자신이 글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밝힌다. [31] 절친 동료인 처클러가 잠깐 소변을 보러 간 사이 대신 경계근무를 서 주다가, 마침 들이닥친 코리건 소위 앞에서 만취상태와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권총을 뽑은 채 욕설을 퍼붓고 만다. [32] 아래의 베라 켈러와도 풍기는 이미지가 은근히 다르기에 보는 재미가 있다. [33] 길 건너 살았지만 서로 잘 알지는 못하는 사이이며, 정확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베라는 동네에서 남성들의 흠모를 받는, 인기많은 여성으로 보인다. [34] 마지막 화에서 레키가 직접 밝히지만 해당 편지들은 쓰기만 하고 부치지는 않았으며(자기가 살아돌아갈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고, 살아돌아가지 못하면 그 편지들도 의미없으리라 생각했다고), 엄청난 빗줄기로 병사들을 미쳐버리게 만들었던 글로체스터 곶에서 잉크가 모두 씻겨져내려가 버렸다… [35] 레키의 엄마는 베라가 고스펙의 남친이 있는듯한 모습을 보며, 베라는 전부터 너에겐 관심도 없었다고 아들의 뼈를 때려버린다.그런 아들에게 쪽발이냐는 핀잔을 들은 건 덤 [36] 레키가 이 날 베라의 집을 노크하자 베라의 어머니가 먼저 나왔는데, 레키를 알아보고는 잘 돌아왔다고 말하면서도 못내 탐탁찮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관련하여 더 퍼시픽 위키에 따르면, 베라와 레키는 원래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베라의 어머니는 '레키는 문제아이므로 멀리하라'고 베라에게 어릴적부터 충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베라는 레키가 약간 반항적인 기질을 갖고 있었던 건 알았으나 오히려 그에게 약간의 감정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작중에서 베라는 출연 분량이 적은 탓인지 모르겠지만 사회나 시대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없으며 그저 유복한 집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더 퍼시픽 위키에 따르면 그녀 역시 진주만 공습, 일본제국의 팽창을 걱정하고 이를 막기 위한 자국 군인들의 희생 등 당시 사회상에 대해 상당히 통감하는 여성으로 보인다. 1941년 12월 베라가 레키와 작별인사를 한 성당에 들른 것도, 작중에서는 그냥 쇼핑이나 가려다가 성당이 보이길래 대신 들렀다는 식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녀는 진주만 공습 소식에 매우 슬퍼했고 루즈벨트 대통령의 연설에 깊이 감명받아, 순국한 USS애리조나호의 병사들과 미국을 위해 기도하고, 레키도 전장으로 나가 다시 못보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에 성당을 찾은 것이라고 한다. [37] 해당 남성은 이제 막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여 갓 임관된 육군 소위였는데, 레키는 베라가 보는 앞에서 "축하드립니다, 소위님. 하지만 본 무대( 태평양전쟁)는 놓쳐버리셨네요"라고 대놓고 까버린 것이다. 게다가 이후 벌어진 전쟁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으로 각각 미국에선 잊혀진 전쟁, 더러운 전쟁 취급을 받아 2차대전 참전자들 같은 영예는 누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