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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6 03:05:43

대구 일가족 변사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사건 전개
2.1. 모자(母子)의 외출2.2. 어머니 조 씨 시신 발견2.3. 장녀 류 양 시신 발견2.4. 류정민 군 시신 발견
3. 결과4. 기타

1. 개요

2016년 9월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에 거주했고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류정민 군(당시 10세)[1]의 일가족에게 얽힌 기묘한 실종 및 변사 사건.

9월 15일 오후 5시경에 류정민 군과 그의 어머니 조 씨(당시 52세)가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함께 외출하는 장면이 CCTV에 찍힌 것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알려진 사건인데 어머니 조 씨는 9월 20일 경상북도 고령군[2]의 고령대교 부근 낙동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그 다음 날인 9월 21일에는 가족이 거주하던 아파트 베란다 붙박이장에서 이미 백골이 된 류정민 군의 누나(당시 26세) 사체가 발견되었으며 9월 28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교 하류 2km 지점에서 류정민 군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일가족 3명이 모두 숨진 채 발견되었다. 도대체 그들이 무슨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 것[3]인지 알 수 없으며 특히 장녀 류 양의 시신이 왜 붙박이장 안에 오랫동안 방치된 것인지[4]에 대해 여러 의문이 제기되었으나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며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2. 사건 전개

2.1. 모자(母子)의 외출

사건은 2016년 9월 15일에 시작되었다. 이날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물동에 거주하던 류정민 군(당시 10세, 초4)과 그의 어머니 조 씨(당시 52세)가 함께 외출에 나섰는데 두 모자가 외출하는 모습은 아파트 현관에 설치된 CCTV에 고스란히 포착되어 있었지만 이 두 모자가 외출에서 돌아온 모습은 CCTV에 찍히지 않았다. 즉, 그 길로 두 모자는 행방불명되었다. 당시 류정민 군은 9월 9일에 등교한 것을 마지막으로 계속해서 학교에 나오지 않았는데 학교 측에서는 학생이 등교를 하지 않자 집에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고 결국 학교 측에서 류정민 군의 실종 신고를 하면서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사건을 담당한 수성경찰서는 곧바로 류정민 군의 행적을 조사했고 9월 15일 류정민 군이 살던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함께 외출하는 장면을 포착했으며 인근의 CCTV를 모두 뒤지면서 류정민 군과 어머니 조 씨의 행방을 추적했다. 그 결과 류정민 군과 어머니 조 씨는 택시를 타고 북부정류장으로 갔고 거기서 버스를 타고 팔달교 부근으로 이동한 것이 확인되었지만 팔달교 부근에서 버스에서 내린 이후로는 행적이 끊어졌다. 팔달교 부근을 돌면서 류정민 군과 어머니 조 씨를 목격한 사람이 있는지 조사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2.2. 어머니 조 씨 시신 발견

조 씨는 본래 학습지 교사였는데 사건으로부터 8년 전 남편과 이혼한 후 류정민 군과 누나 류 양을 홀로 키웠다고 하며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아들 류정민 군은 2013년 3월에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는데 어느 날 조 씨가 갑자기 '아이를 내가 직접 가르치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을 시켰다고 한다. 학교 측에서는 류정민 군을 '정원 외 학생'으로 분류하였고 류정민 군과 어머니 조 씨에게 등교시킬 것을 권했지만 그때마다 조 씨는 고집을 부리며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무려 7학기, 즉 3년 반 동안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결국 조 씨는 2016년 초에 아들 류정민 군을 교육적으로 방임했다며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아동 학대 혐의로 고발당했지만 경찰이 교육당국과 합동으로 류정민 군에 대한 심리, 지능 검사 등을 한 결과 또래 수준의 학업 성취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조 씨도 아들을 지도할 지적 소양이 충분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추후 학교에 보내겠다는 확답도 하면서 무혐의 처분됐다.

그래서 9월 2일부터 다시 류정민 군을 학교에 보냈고 모두 7학기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류정민 군의 학력 평가 결과 우수한 성적을 보여 제 나이에 맞는 4학년에 배정되었지만 류정민 군은 분리불안장애가 있었는지 어머니 조 씨와 떨어져 있으면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피부병에 의한 발진이 심했다는 이유[5]로 조퇴와 결석을 반복하다가 1주일이 지난 9월 9일부터 다시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조 씨는 추석 연휴가 끝나는 9월 19일부터 다시 아이를 학교에 보내겠다고 약속했지만 9월 15일 아이와 함께 실종되었다.

CCTV에 마지막 모습이 찍힌 지 5일이 지난 9월 20일,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 고령대교와 달성보 사이 낙동강 부근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되었다. 오후 3시 20분쯤 한 낚시꾼이 나무 조각과 풀에 뒤엉킨 채 강변 5m 앞까지 밀려온 변사체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는데 신고를 받은 경찰은 급히 현장으로 출동해 강물에 표류하고 있던 중년 여성을 확인했다. 확인 결과 그 중년 여성은 실종자 조 씨였다.[6] 발견 당시에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퉁퉁 부은 것 이외에 시신에 특별한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아무래도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어머니 조 씨는 버스를 타고 팔달교에 온 다음 강물로 뛰어내렸고 그 시신이 고령군까지 떠내려온 것으로 추정되었다.

2.3. 장녀 류 양 시신 발견

9월 21일 조 씨의 사망 사실을 알리기 위해 범물동의 아파트를 찾은 경찰은 아무런 응답이 없자 결국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집 안은 오랫동안 사람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경찰은 들어가자마자 퀘퀘한 냄새가 풍기는 베란다의 테이프가 붙여진 붙박이장을 발견했는데 그 붙박이장 안에는 해골들이 있었다.[7] 이 해골은 이불과 비닐에 싸여 있었는데 젊은 여성의 뼈와 흡사했다. 확인 결과 바로 류정민 군의 큰 누나(당시 26세)였다.[8] 유골 중 설골이 두 조각으로 골절된 것이 발견되어 목을 졸려서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찰은 추정했으나 국과수의 검사 결과 살해를 통해 부러진 것인지 백골이 되면서 스스로 부러진 것인지 확정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타살의 흔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9] 그 외의 유골은 전체적으로 손상 흔적이 없어서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탐문 수사 결과 류 양은 주위 사람들 말에 따르면 안 보인 지 3년이 넘었다고 한다. 생전 류 양의 모습은 키가 작고 왜소한데다 외모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인의 기준과는 맞지 않았다고 하며 자폐증이 있었는지 말이 없고 구석진 곳에 혼자 앉아서 땅만 바라보고 다니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는 중퇴했으며 이후에도 직장에 다니지도 않았다고 한다. 즉, 늘 혼자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고 대인관계도 거의 없었던 셈이다. 단, 실종 전까지 가끔 동생과 단 둘이 외출하는걸 본 동네 사람들은 있었다고 한다. 이 가족은 모친의 이혼 직후 그 집에 거주하던 시점부터 셋 다 외부와 교류가 거의 없었다.[10]

참고로 조씨 가족의 사건 이전 1년 도시가스 사용량은 다른 집의 10% 수준으로, 온수만 쓴 수준이라 한겨울에도 거의 보일러를 안 틀었던 수준으로 밝혀졌다. 즉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한 딸의 시신을 외부에 알리기 싫었던 조씨가 베란다의 장에 보관한 뒤 부패하는 냄새가 외부에 인식되지 않게 하려고 겨울 보일러도 안 틀었을 가능성이 높다.[11][12]

2.4. 류정민 군 시신 발견

집 안을 수색한 결과 냉장고에서 종이접기한 종이들이 들어있는 병과 유서 한 통이 발견되었다. 유서는 '내가 죽거든 십자수, 색종이 접기 책을 종이접기를 좋아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세요'라고 적혀 있었고 겉봉에 분명히 '유서'라고 적혀 있었다. 필적을 확인한 결과 류정민 군이 쓴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9월 15일 류정민 군과 어머니 조 씨의 외출은 동반자살을 위한 외출이었고 이 유서는 외출하기 전에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여전히 류정민 군의 행방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일주일 뒤인 9월 28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교 인근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경찰이 현장으로 달려가 확인한 결과 바로 실종자 류정민 군의 시신이었다. 류 양의 죽음에 대해 증언해 줄 마지막 목격자 류정민 군마저 사망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 사건은 숱한 의문만 남긴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국과수에서는 류정민 군의 시신 부검 결과 '외력에 의한 외상은 없으며 부패 등으로 강물이 몸 안에 들어간 상태여서 부검만으로는 사인을 가려내기가 어렵다'는 1차 소견을 냈다. 실종 전에 유서를 작성한 점과 시신에 외상이 없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어머니와 함께 실종된 9월 15일에 동반자살을 감행했고 강물에 뛰어든 시신이 어머니의 시신은 고령군 쪽으로 흘러가면서 발견되었고 류정민 군의 시신은 달성군 쪽으로 흩어져서 발견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3. 결과

2016년 9월 15일 CCTV에 찍힌 류정민 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저항의 모습은 전혀 없이 어머니와 함께 걸을 뿐이었는데 이에 경찰은 어머니 조 씨가 완력으로 아들을 살해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조 씨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여동생에게만 연락할 정도로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았고 아들 류 군도 학교에 나가지 않고 어머니에게 의지해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조 씨의 시신이 발견된 지 3개월이 지난 12월 23일 경찰은 숨진 조 씨를 딸의 사체은닉과 아들을 설득한 것으로 판단해 승낙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두 달 간 사건 검토를 한 뒤 2017년 2월 24일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불기소처분했다.

4. 기타




[1] 2006년 3월 5일생. # [2] 대구 달성군과 맞닿아 있는 지역이다. [3] 추가적인 증거를 더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경찰은 류정민군은 모친 조씨가 합의하에 살해하였고 조씨 본인은 자살한 것으로 잠정 결론내렸다. 대신 류정민군의 누나는 심각한 부패 상태로 인해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4] 시신을 패딩과 이불과 비닐로 싸 놓았기에 부패도 급격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사망시점도 특정할 수 없었다. 물론 발견 자체가 사망한 지 수년 뒤이고 뼈에 손상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상황이라 거의 증거를 얻기 어려웠다. [5] 담임선생님이 모친 조씨가 조퇴사유로 아들의 몸을 보여주면서 실제로 왼쪽 다리에 어느 정도 심해 보이는 발진이 있는 것은 보았다고 경찰에 증언했다. [6] 시신에 걸쳐진 가방에 신분증과 휴대폰이 있었다. 통화기록 조회, 지문 분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되었으며 현금 160만 5천 원도 가방에서 발견되었는데 5만 원짜리 지폐다발과 1천 원짜리 5장이 있었다. [7] 붙박이장에 붙여진 테이프 끝부분에서 완전하지 않고 일부분만 묻어 있는 지문이 발견되었다. 지문은 어머니 조 씨의 것과 상당히 일치했다. 조 씨가 류 양을 붙박이장에 유기했다는 증거다. [8] 해골 발견 당시 피부 한점 없고 뼛조각으로 조각나 있어 지문으로는 신원 확인이 불가능했다. 뼛조각을 맞춘 후 골반 뼈가 둥글고 두개골이 닳은 정도로 20대 여자라고 추정했으며 2015년 겨울부터 류 양이 보이지 않았다는 주변인들의 증언과 해골이 입고 있던 겨울용 패딩을 토대로 해당 유골이 류 양이라 결론지었다. [9] 사망 후 단기간 내 발견되는 설골 골절은 경부 압박 등의 외상에 의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장시간이 지난 뒤 살점이 모두 부패하고 백골화가 되고 나서 발견된 설골 골절은 다른 뼈의 손상이 발견되거나 다른 증거가 추가로 있지 않는 한 외상의 증거로 확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설골은 구조가 가장 약한 뼈에 속해서 건조되면서 상당히 작은 충격으로도 쉽게 부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0] 모친 조씨는 직업인 학습지교사 일 외에는 사적인 교류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이 어쩌다가 말을 걸어도 제대로 답하지 않았고 어떤 이웃은 조씨가 집을 나서려다가 그 이웃이 복도에서 걷는 걸 보고 문을 닫고 안 나온 것도 봤다고 한다. 일부러 동네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도 피해서 다녔다는 뜻이다. 아들 류정민 군은 5살부터 부모가 이혼하여 그곳에서 살았으나 학교를 안 다녔을 정도였으니 말을 어느정도 배웠을 때부터 외부인과 사적교류 자체가 없었다. 그래도 류 군은 모친이 손을 꼭잡고 데리고 다니는 걸 동네 사람이 자주 봤는데 류 양은 부모의 이혼 전 생활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친과 그 집에 살게 된 후의 삶은 동생보다 더 외출이 없었으니 교류가 없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동네 사람이 조 씨는 류정민 군하고만 외출했다고 기억할만큼 류 양은 외출을 동생보다 더 자주 안 했다고 한다. 단, 사건으로부터 2년 전까지 류 양과 류정민 군이 가끔 단 둘이 외출하는 걸 본 사람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추정하는 사망시점이 2년 전 겨울이다. [11] 게다가 자살 시점이 류정민 군이 안 다니던 학교를 3년 반만에 억지로 다니기 시작한지 2주 밖에 안 된 시점이니 자녀가 외부와 교류하기 시작하고 그러다 보면 2~3년간 숨겨 왔던 시체가 결국 들통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찰 수사와 처벌도 받으면서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될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는 상황에 정신적 압박감이 들어 자살을 결심했을 가능성이 있다. [12] 단 류 군이 학교를 안 다니게 한 건 류 양의 사망과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사망시점이 나중이기 때문이다. 자주는 아니라 가끔이었으나 사건으로부터 2~3년 전까지 류 양이 류 군과 함께 동네를 걸어다니는 걸 본 사람들이 있다. [13] 참변을 당한 일가족은 어머니 조 씨, 큰 딸 류 양, 막내 아들 류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