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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23:06:10

다르코 코바체비치

세르비아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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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다르코 코바체비치
Darko Kovačević | Дарко Ковачевић
출생 1973년 11월 18일 ([age(1973-11-18)]세)
유고슬라비아SFR 세르비아SR 코빈
국적
[[세르비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87cm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 / 은퇴)
소속 선수 FK 프롤레테르 즈레냐닌 (1992~1994)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94~1996)
셰필드 웬즈데이 FC (1996)
레알 소시에다드 (1996~1999)
유벤투스 FC (1999~2001)
SS 라치오 (2001)
레알 소시에다드 (2001~2007)
올림피아코스 FC (2007~2009)
국가대표 59경기 10골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 1994~2004)

1. 소개2. 클럽
2.1. 선수 생활 초기2.2. 소시에다드 1기2.3. 이탈리아 무대2.4. 소시에다드 2기2.5. 올림피아코스
3. 국가대표4. 은퇴 이후5. 여담6. 기록
6.1. 대회 기록6.2.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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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세르비아의 前 축구선수.

2000년대 소시에다드의 공격을 이끌었던 골잡이로 터키 출신의 공격수인 니하트 카흐베지와의 호흡으로 상당히 유명했다.

그는 187cm의 장신으로 공중전에 굉장히 능했으며 덕분에 헤더로 곧잘 골을 넣었다.

2. 클럽

2.1. 선수 생활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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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르베나 시절의 코바체비치.

고향을 연고로 하는 라드니츠키 코빈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이후 프롤레테르 즈레랴닌의 스카우터의 눈에 띄고 그곳으로 이적, 프로로 데뷔한다. 2시즌간 51경기 37골이라는 대박을 친 20대 초반의 공격수는 빠르게 자국의 거함인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이적했다.

이곳에서 코바체비치의 득점은 계속되었고 2시즌간 47경기 37골을 기록한다. 유고슬라비아의 신성으로 주목을 끈 코바체비치는 1996년 1월 잉글랜드의 셰필드 웬즈데이로 이적한다. 이적 후 첫 경기인 볼턴을 상대로 멀티골을 꽂아넣는 등 좋은 출발을 보인 코바체비치였으나 이후 부진에 시달렸고 반 시즌만에 잉글랜드 무대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2007년 영국의 타임지는 코바체비치를 최악의 영입 10위에 랭크한 바 있다.

2.2. 소시에다드 1기

잉글랜드의 처절한 실패를 뒤로 한 코바체비치가 향한 곳은 스페인의 레알 소시에다드였다.

소시에다드에서 그는 본인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고 3시즌간 98경기 41골을 득점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2.3. 이탈리아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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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유벤투스는 부활한 코바체비치에게 관심을 가졌고 이적이 성사되었다. 첫 시즌 UEFA컵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코바체비치였으나 이탈리아 무대와 그는 상성이 좋지 않았고 리그에서 1시즌 반 동안 11골만을 넣는 부진에 빠졌다. 레인저스 등의 오퍼도 있었으나 유벤투스는 라치오의 마르셀로 살라스를 영입하기 위해 코바체비치를 내주었고 그는 떠밀리듯이 라치오로 이적했다. 라치오에서 6개월간 무대가 바뀌지 않은 만큼 그의 활약을 나아지지 못했고 7경기 무득점에 그쳤다.

2.4. 소시에다드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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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파트너 니하트와 함께.

2년만에 코바체비치는 본인을 구원해줬던 레알 소시에다드로 복귀했다. 2007년까지 꾸준히 소시에다드에서 활약한 코바체치비는 180경기 51골을 기록했다. 특히 02-03 시즌에는 니하트 카베치와 함께 43골을 합작[1]하며 팀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2.5. 올림피아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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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시즌 소시에다드가 2부리그로 강등되자 나이도 어느정도 있었던 코바체비치는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했다. 첫 시즌 리그에서 17골을 뽑아낸 이 세르비아 출신의 골잡이는 시즌 종료 후 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선정되는 등 그리스 무대에서도 날아다녔다. 2009년 초 코바체비치는 의사에게 심장쪽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고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그에게 은퇴할 것을 조언했고 코바체비치는 이를 수용해 시즌이 끝난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1994년부터 2004년까지 59경기 10골을 기록했다. 1차례의 유로, 월드컵에 참가한 바 있다.

4. 은퇴 이후

은퇴 이후 그리스에서 칼럼니스트로 잠깐 활동했고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올림피아코스의 수석 스카우터로 활동했다.

5. 여담

2020년 1월 7일, 총격 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뻔 했다. 괴한이 3m 거리에서 코바체비치에게 총격을 가했는데 운좋게 살아남았다고 한다.[2] 코바체비치에게 청부업자를 보낸 사건의 배후로는 현재 승부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아왔던 올림피아코스 시절 전 팀 동료 라울 브라보가 지목되어 수사를 받고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천수 라리가 데뷔골을 뺐어갔다. 2003-04시즌 RCD 에스파뇰과의 리그 개막전 원정경기[3]에서 이천수가 골키퍼와 1:1 찬스에서 골문으로 날린 로빙슛을 문전 쇄도하다 다이빙하며 자신이 마무리 하였다. # 볼이 골문을 향하고 있었고, 코바체비치의 마지막 터치가 있었던 위치가 골라인 바로 앞이여서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이천수의 득점으로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바체비치가 문전 쇄도하고 있을 때 마크맨이 따라 붙었기 때문에 마무리하지 않았다면 수비가 걷어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로 인해 이천수는 득점이 아닌 도움을 기록하게 되었다.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1] 코바체비치 20골 - 니하트 23골 [2] 이탈리아 신문 가제타는 코바체비치에게 보낸 살인청부업자가 위협사격을 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거리가 가까웠기에 살해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빗나가게 한 것이다. 이는 코바체비치에게 중요 정보 발설을 하지 못하도록 협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3] 참고로 이 경기는 이천수의 라리가 데뷔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