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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13:00:41

닝 바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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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g Baizura binti Sheikh Hamzah, 1975.6.28 ~

흔히 "닝(Ning)"으로 알려진 말레이시아의 가수. 말레이어 외에도 영어, 중국어( 만다린 광동어), 일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다양하게 녹음했으며 남들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특유의 가성으로 팬들을 사로잡은 스타이다.

1. 생애

1975년 6월 28일 슬랑오르 카장에서 태어났으며 카장 여자중학교를 나왔다. 중4(한국의 고1)[1]때였던 1991년 보이스 오브 아시아 대회에 출전했으며 최고연예개발상(Best Artiste Development Award)을 받았다. 이에 힘업어 소니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1993년 1집 "Dekat Padamu"로 데뷔했다.

2. 가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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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8세로 바로 중학교를 졸업했으며 남들은 대학입시를 앞둔 때였지만, 닝은 성공적으로 데뷔를 치르면서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당장 실질적인 타이틀곡[2]인 "Curiga"로 바로 최고의 신인가수(Best New Recording Artiste)로 선정되었으며 이 외에도 "Dugaanku"와 같은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물론 이렇게만 보면 그저 평범한 신인가수 정도로 생각될 수 있겠지만, 닝은 일반인은커녕 심지어 다른 유명 가수들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특유의 가성과 정말로 높은 고음으로 화제를 모았다. 더더욱이나 그녀의 가성은 가성이지만 가성같지 않고 두성같은 나름의 애매모호한 상황이었는데, 그것으로 아주 폭발적인 고음을 냈다는 것이 굉장히 대단했다. 얼마나 높았으면, 아예 타인이 부를 때는 다들 키를 낮춰서 부를 정도라고. 당장 남자는커녕 여자들조차도 함부로 저렇게 부를 수 없다!

덕분에 최고의 신규앨범(Best New Album)으로 선정되었으며 이에 힘업어 이듬해 2집 "Ning"을 내기에 이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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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2집 이후로는 1집에 비해 다소 인지도는 떨어지는 편이며, 더더욱이나 2016년 온라인으로 재발매될 때까지는 CD나 카세트테이프 등으로 구하지 않는 이상 구할 수 없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그래도 1집보다 더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으며, 특히나 주목할 점은 영어 노래들을 선보이면서 오히려 서구권 가수들에 뒤쳐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대표적인 예로 "Share My Dream"과 "In Another Life". 물론 전자는 오죽하면 최근까지도 구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후자만으로도 충분하다. 재즈풍의 "Penjara Kasih" 같은 노래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끄는 면모가 있다. 특히나 1집에 비해 훨씬 더 세련된 음질이며, 오죽하면 요즘 최신 가요들과도 별 차이가 없다.

비록 1집보다는 다소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그래도 높은 인기를 구가했으며, 바로 동년 학생잡지 Majalah Quest와 인터뷰까지 했다. 다음은 Majalah Quest와의 인터뷰 중 닝이 한 대답이다.
전 노래부르기를 좋아했어요. 학창시절 바이올린도 배웠지만 보컬 트레이닝도 받았답니다. 물론 음악뿐 아니라 스포츠도 좋아했었어요. 경기가 있을 때마다 꼭 출전해서 저의 카장 여자중학교의 이름을 널리 알린, 그런 저였죠. 어머니께서 제게 '운동을 할거냐 음악을 할거냐'라고 물어보셨어요. 저는 '음악을 하겠다'고 답해드렸죠. 뭐, 차라리 저만의 재능을 이용하는 게 미래에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깐요.

이후 닝은 Majalah Quest 19부(1994년 10월 ~ 12월)의 인물로 당당하게 실렸으며, 여세를 몰아 1995년 3집 "Teguh"를 발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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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는 CD 따위로 구하지 않는 한 구할 수 없는 노래들이 많지만, 그래도 3집의 인기도 대단했다. 2집보다 더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는 한편, 영어 노래의 경우 " You & I"를 제외하곤 없었던 점이 아쉽지만 그래도 닝의 재능은 충분히 인정할 만 하다. 적어도 좀 촌스러운 풍의 노래들을 고수했던 웬만한 당시 가수들과는 달리 시대를 앞선 장르를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2년을 꼬박 쉬고 1997년 4집 "Ke Sayup Bintang"으로 컴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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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령도자 닝 바이주라동지께서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3]

이 때 나이는 22세였지만 젊은 스타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좀 아주머니의 삘이 나기 시작하긴 했던 때였다. 그렇다지만 시대에 맞게 더 세련되고 더 다양한 장르를 향해 나아갔으며, 안그래도 나라 안팎이 경제위기로 흉흉한데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돈도 어마어마하게 벌었다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다.

그 후로도 쭉 활동을 이어왔으며, 2008년 아시아 패시픽의 자문인 영국 오마 샤리프, 크리스토퍼 레이튼 달튼과 결혼했으며, 슬하 아이를 낳지는 않았지만 대신에 오마가 전 부인과 뒀던 아들 하나를 두고 지금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3. 앨범


[1] 말레이시아는 고등학교가 없는 대신 중학교가 5학년까지 있다. 참고로 한국의 고3에 해당되는 부분은 A-Level, 파운데이션, 대학입시과정 등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으나, 몇몇 학교들은 자체적으로 중6을 두기도 한다. [2] 말레이시아는 타이틀곡이 없다. [3] 근데 솔직히 커버가 은근 윗동네 냄새가 강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