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나 나는 나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던 걸까. 그만 잠들고 싶었을 일곱 살의 나를 나는 몇 번이나 흔들어 깨운 걸까. 오래된 상처를 긁어내려고 나는 새로 돋은 살까지 다치게 하고 있었구나."
# 그때, 아빠는 학생운동을 하다 군대에 끌려 온 대학생이었고 엄마는 부대 앞 가게에서 일하던 아가씨였다. 아빠는 엄마를 ‘나의 나타샤’라고 불렀고 시를 읽어주었고 엄마와의 사랑을 말리는 모든 사람과 인연을 끊었다. 그러나 십 년이 지나지 않아 아빠는 엄마를 ‘내 인생을 망친 년’이라고 불렀고 끝없이 술을 마셨고 온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따돌렸다.
# 엄마는 어린 다정에게 취한 아빠를 피해 방문을 잠그는 것을 가르쳤고 온몸으로 다정과 태정을 지켰다. 엄마는 늘 반짝이는 것을 조심하라고 했다, 그것은 공짜일 리가 없다고. 인어공주에게 세상이 그랬듯, 다리를 주면 혀를 잘라 간다고. 그래서 다정은 왕관 쓴 왕자 따위가 아니라 캄캄한 벽 속에 묻혔을 때 소리 내어 울어줄 검은 고양이를 기다렸다. 먼먼 어느 나라의 공주가 아니라 귤 한 봉지를 사서 들고 들어오는 옆집 아저씨의 딸이 되고 싶었다.
# 어느 밤 잠결에 엄마의 손에 끌려 그 집을 떠나온 후, 다정과 엄마와 동생은 한동안 허름한 여관에서 살았다. 그 건물은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았기에 엄마는 늘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았고 다정은 너무 읽어 다 외워버린 책 대신 주말의 명화를 보며 잠들 수 있었다. 까칠은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누가 문을 걷어차리라는 불안감 없이 마음 편히 잘 수 있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눈치를 보며 그곳을 드나들던 어른들이 여관복도에서 땅따먹기하는 다정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것도 웃겼고 엄마에게는 여관비를 독촉하면서도 다정과 동생에게는 요구르트를 몰래 쥐여 주던 목소리 큰 주인아줌마도 좋았다. 무엇보다 집이 아니어도 나를 받아주는 곳이 있다는 게 정말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이다음에 크면 나도 여관주인이 되어야겠어, 꼬마 다정은 생각하곤 했다.
# 아빠를 닮아 머리가 좋았고 엄마를 닮아 생활력이 강했다. 비싼 학원 한 번 다닌 적 없었지만, 장학금씩이나 받고 대학을 졸업했고 그 여관보다 훨씬 좋은, 특급호텔에 취업했다. 컨시어지팀으로 입사를 해 동기 중 가장 빨리 매니저가 되었고 그런 다정을 눈여겨본 홍보팀에서는 꾸준히 스카우트 제의를 해오고 있다.
# 발군의 인재인 다정에게 제일 어려운 숙제는 연애다. 엄마를 닮은 걸까? 다정은 아빠를 닮은, 그러니까 쓰레기 같은 남자들만 줄줄이 만나왔다. 이유가 뭘까? 내 몸에 쓰레기를 끌어당기는 자성이라도 흐르는 걸까? 쓰레기여 여기로 오라, 내 이마에 적혀있는데 내 눈에만 안 보이는 걸까? 심지어 3층 남자 주영도는 처음 보자마자 다정이 쓰레기 자석인 걸 맞혀버렸다.
# 새 출발을 하기 위해 구구빌딩으로 이사를 결심했지만 그 결심을 비웃듯 이사 직전 그 건물에선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귀신이 나온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으나 까칠은 예정대로 이사를 했다. 언제나처럼 피해자에게 이입하는 다정이었기에, 무섭기보다는 딱하다 생각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귀신이 됐을까, 물론 고개 숙여 머리를 감다가 눈이 마주치면 좀 무섭긴 하겠지만, 신나는 트로트 한 곡 짱짱하게 틀어놓으면 귀신도 신나게 스텝을 밟느라 거꾸로 나를 쳐다보고 있지는 않을 거야.
# 그런 다정에게 자꾸만 다가오는 한 남자가 있다. 그러다 말겠지 싶었지만 지칠 기색이 없다. 선을 넘으면 물어버려야지 별렀는데 아슬하게 선을 넘지도 않는다. 혹시 당신도 쓰레기세요? 대놓고 물어도 보고 킁킁 냄새도 맡아봤지만 익숙한 쓰레기의 냄새도 나지 않는다. 심지어 강까칠 사용설명서라도 읽은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가장 바라고 꿈꿔왔던 장면을 그대로 읊으며 진심을 고백한다. 주위의 모두가 그 남자를 좋아한다. 딱 한 명, 다정이 쓰레기 자석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던 3층 남자 주영도만 빼고.
"이건 그냥 흉터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지울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훈련을 해야죠. 바꿀 수도 없는 과거하고 싸우느라 지금이 힘들면 안 되니까"
# 구구빌딩 3층, 주영도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 아픈 형에겐 골수와 림프구와 백혈구와 고립구가 필요했고 그걸 수혈해 줄 수 있는 가족은 이제 겨우 열 살이 된 영도밖에 없었다. 굵은 주삿바늘이 등을 찌르고 난 뒤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채 마취에서 깨어나기를 여러 번, 엄마는 그때마다 말했다.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영도 덕분에 이제 형도 곧 나을 거라고.
# 주위의 모든 사람이 자주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영도는 어느 순간부터 거짓말을 잘 구별해낼 수 있었다.
간호사는 아픈 주사를 아프지 않다고 거짓말했고 형은 아프면서 아프지 않다고 거짓말을 했고 엄마는 형과 영도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했지만 가끔은 영도가 어린아이라는 것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 네 번의 골수이식에도 낫지 않았던 형에겐 급기야 급성신부전이 찾아왔고 급히 신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영도밖에 없었다. 아빠는 더는 영도를 DNA 공장으로 쓸 수는 없다고 울었고 엄마는 그래도 형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울었다. 그날 밤, 아빠는 엄마가 절대 찾지 못할 곳에 영도를 숨겼다. 그렇게 가게 된 낯선 종교 시설에서 며칠을 견뎌낸 영도에게 아빠가 다시 찾아온 건 형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형과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영도는 가장 슬펐고 아팠고 또 너무 어렸지만 형을 잃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한 엄마는 끝내 그런 영도를 안아주지 않았다.
# 영도는 정신과로 진료를 정했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거짓말을 찾아내 꽁꽁 숨기고 있는 아픈 곳까지 고쳐주고 싶어서,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사람들을 사는 것처럼 살 수 있게, 죽고 싶은 사람들을 살고 싶게, 그렇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누군가를 구해준다는 것, 영상도네이션에게 그것은 그 누구가 아닌 영도 자신의 삶을 비로소 의미 있게 만드는 유일한 생존법이었으므로.
# 레지던트를 끝마칠 무렵, 영도의 심장이 고장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확장성 심근병증, 제세동기를 심는 수술을 받고 심장이식을 기다려야 했다. 병원 일을 할 수 없었던 그 시기, 방송국 피디로 일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한 드라마의 의학 자문을 맡게 되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안가영, 연쇄살인범의 정신을 분석하는 의사 역할이었다.
# 늘 불안정해 보이던 가영이 드라마가 끝난 후 영도 앞에 불쑥 나타났을 때, 영도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대로 보내면 이 사람은 오늘 죽겠구나, 따라가 그 사람을 살렸고 그때부터 곁에 있어 주었다. 이제 괜찮으니 그만 헤어지자, 가영이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 영도에게 맞는 심장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건강한 누군가의 뇌사를 비는 것이 될까 봐. 입퇴원이 점점 잦아질 즈음 마침내 새 심장을 받게 되었고 그러면 안 되지만 영도는 자신에게 심장을 준 증여자를 남몰래 찾아냈다. 이정범, 당신은 형사였구나, 당신을 죽게 만든 사람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구나. 영도는 그렇게 또 두 가지 숙제를 자신에게 냈다. 최대한 오래, 최선을 다해 당신 몫까지 살아보겠다, 그리고 당신을 이렇게 만든 범인이 잡히는 것을 내 눈으로 반드시 보고야 말겠다.
# 이정범 형사가 생전 근무했던 풍지경찰서를 지겹도록 드나들며 살고 있던 중 대학시절 과외를 해주었던 철도의 소개로 살인사건이 일어난 풍지동의 한 건물, 구구빌딩으로 병원을 옮기게 된다.
#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4층 여자 강다정, 영도는 우연히 상처투성이 두 발로도 야무지게 서 있는 다정에게 위태로운 일이 일어나려 하는 것을 알게 된다. 달려간 곳에서 목격하게 된 갑작스러운 죽음, 심지어 그 죽음의 끝은 또 다른 범죄와 연결되어 있다.
"다정씨는 그냥 연애가 무서운 사람인 것 같아서요. 근데 그런 거면, 저 만나도 돼요. 저 만나세요. 나 만나요."
# 늦가을 호텔에서 다정을 처음 본 이후 줄곧 다정을 따라다닌다. 첫눈에 반했다는 세상 재미없는 소리로 처음 말을 걸더니 때론 아슬아슬하게 때론 한없이 가벼운 농담으로 조금씩 다정에게 다가온다.
# 다정을 따라다니는 게 직업이자 취미이자 특기인 것 같은 사람, 그러니까 언뜻 백수 같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투자 회사 대표라는 번듯한 직업도 있다. 마네킹의 옷을 벗겨 입은 듯 말쑥한 차림과 정돈된 말투, 무엇보다 다정에게만 온통 집중하는 따뜻한 눈길은 ‘이런데도 날 안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라는 식의 도전이라도 받아야 할 것 같은 존재로 보인다.
# 채준은 무엇보다 다정을 무섭게 만들지 않았다. 불쑥 나타나거나 너무 가까이 다가서는 대신 꾸준히 마음을 전했고 아무리 오래 기다렸어도 그만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갔다. 전화번호는 알려줄 수 없다고 하면 두 번 조르지 않았고 다정이 시드는 꽃은 받기 싫다고 하면 다음엔 종이꽃을 접어왔다. 진심으로 고백한 후에도 다정이 망설이자 조르거나 실망하는 티를 내는 대신 기다리겠다고 한다, 천천히 오라고.
# 그런데 다정의 아래층으로 이사 온 남자 주영도가 그런 채준을 막아 세운다. 그 여자를 만나지 말라는 선을 넘는 말과 함께.
멀정하게 생겼고 반듯한 직업과 좋은 품성을 지닌것 같지만 주영도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에 따르면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소시오패스라는 판결이 나왔지만, 알고보니
소시오패스 판결을 받은 이는 이안 체이스였다.
2화에서 다정의 휴대폰을 뒤지는 등의 수상쩍은 행보를 보이는 와중, 구구빌딩 3층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의심을 받는다. 그리고 2화 엔딩에서 다정에게 오르골과 의문의 편지를 남기고는 돌연 투신을 택한다. 대놓고 서브 남주 겸 메인 빌런의 포스를 풍기고 있었기에 뜻밖이라는 반응이 많은 편.
하지만 3~4화에서 그는 본명이 채준이 아닌 최정민이였고, 채준을 닮은 이안 노먼 체이스라는 사람을 다정이 호텔에서 마주친다.
#활동
-2003년 음료수 광고 《애기보리》로 데뷔한 이후 광고모델로 내공을 조금씩 쌓아온 안가영은 연기에 대한 열정을 품고 활동을 드라마계로 넓히게 되었다. 드라마 데뷔작은 2005년 TVC 《시베리아의 연인》으로 극중 호수에 빠졌다가 1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냉동여인’으로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이후 2011년 《풍선껌을 검색하세요》에서 '불던껌' 역으로 호평받으며 큰 인기를 끌었고, 젊은 한류 팬층의 지지를 기반으로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2021년 드라마 《더 프린세스 : 영원의 공주》에서 타임슬립한 감귤국 부화공주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여담
· 이상형은 데뷔 후 줄곧 뒤통수 안 때리는 안 못생긴 남자라고 밝혀왔으나, 최근 인터뷰에서는 잘생기고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웃는 모습이 예쁜 남자로 바뀌었다.
· 같은 작품에 출연한 상대역 배우와 몇 번의 스캔들이 있었으나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정작 본인은 연예인과 사귀는 것을 매우 꺼리며 만에 하나 만나게 되더라도 절대 공개연애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 2015년, 드라마 자문을 맡은 정신과 의사 주 모 씨와 갑작스럽게 결혼한 후 1년 만에 또 갑작스럽게 이혼했다. 결혼 발표 당시 매니저조차도 결혼 소식을 미처 몰랐던 탓에 전화를 건 기자들에게 누구랑 결혼하냐고 되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4]
· 연예계에서는 친분을 자랑할 만한 친구가 거의 없으며, 학창 시절에도 예쁜 척 하느라 친구가 없었다고 한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친구 두 명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미션을 받았을 때, 자신은 친구가 한 명밖에 없다며 대번에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그러면서도 자신의 MBTI는 ‘ENFP’라며 사회성이 매우 좋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팬들은 다시 검사해보라고 조언하기도.
· 주당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 당시 자신이 광고모델이었던 맥주를 궤짝으로 마시는 모습이 파파라치에 의해 공개된 적이 있는데, 소속사는 이미지 추락을 걱정했지만, 그 브랜드는 오히려 광고효과를 톡톡히 누렸고 안가영 또한 광고에 진심인 모델로 광고주들에게 크게 사랑받았다.
· 현재도 자신이 광고 중인 모 음료수를 열심히 마신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해외를 갈 때도 박스째 챙겨간다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 이후, 이름값과 영향력에 비해 광고를 찍는 일이 다소 뜸해졌다.
· 이는 결혼과 이혼에 의한 영향이라기 보다는 아직도 남아있는 동영상에 관한 루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5]
김남희(
김남희 扮): 안가영이 출연 중인 드라마 '더 프린세스 - 영원의 공주'의 상대 배우. 드라마가
더 킹 : 영원의 군주 패러디...
[1]
주영상도네이션
[2]
어머니 문미란
[3]
일종의 직업병이자 감탄사이다.
[4]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결혼식’만 한 것이라는 지인의 발언이 카더라 통신을 타고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실제로 두 사람은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5]
동영상에 대한 실체는 전혀 확인된 바가 없으며, 전 매니저이자 연인이었던 조 모 씨가 악의적으로 루머를 퍼뜨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주들이 꺼리는 분위기가 생겼고 광고 계약 시 동영상 관련 조항이 추가되기도 한다고. 이로 인해 마음 고생이 심했던 안가영은 3년에 가까운 공백기를 갖기도 해 팬들이 매우 안타까워했다. 현재는 잘 극복하고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