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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20:59:26

오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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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973년 공사화 이전에 퇴사 [A]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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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실
吳英實|Oh Young-sil
'''
파일:배우오영실.jpg
출생 1965년 1월 30일 ([age(1965-01-30)]세)[1]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現 서울특별시 동작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59cm, 49kg
가족 배우자 남석진
장남 남혁수(1992년생)
차남 남종수(1995년생)
학력 서울흑석초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 금속공예학 / 학사)
종교 개신교[2]
소속사 빙고원이엔티
데뷔 1987년 KBS 15기 공채 아나운서

1. 개요2. 생애3. 주요 출연작
3.1. 방송3.2. 드라마
4. 홍보대사5. 수상6. 기타7. 비판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전직 아나운서.

2. 생애

1965년 1월 30일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아버지 오희영(1932. 10. 10 ~ 1970. 6. 17)과 어머니 천수임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오희영은 갑종간부후보생으로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한 장교 출신[3]으로, 주월한국군사령부 군사정보부대 소속 중령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1970년 6월 17일 호찌민 시 부근에서 첩보 수집 중에 차량 전복 사고로 순직했다. 한 달 뒤인 7월 29일 유해가 국내로 봉환되어 국립서울현충원 51묘역에 안장되었다.

1987년 KBS 공채 아나운서 15기로 아나운서 경력을 시작했으며 가요톱10을 위시한 예능프로그램은 물론 TV유치원부터 9시뉴스 주말앵커까지 아나운서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했다.[4]본인 말로는 서서 하는 프로그램은 열린음악회 빼고는 다 해본 것 같다고. 1997년 육아를 위해 퇴사한 뒤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했다.[5]

2008년 SBS 아내의 유혹에서 정하늘 역을 연기하면서 사실상 연기자로 전업했다. 따라서 그 시점부터는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정하늘이 연기 첫 데뷔 캐릭터였는데 지적장애 캐릭터여서 처음 연기하기엔 부담스러웠으나 완벽하게 잘 소화해내어 큰 호평을 얻었다.

2010년 갑상선암으로 수술을 받고 완치되었으며 이후에도 조연으로 꾸준히 활동 중이다.

MBC 복면가왕 96차 경연에서 나의 1승을 알리지 말라! 광화문광장으로 나와 스앵님! 우리 애 꼭 월스트리트 가야해요! 월스트리트와 같이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기 100m 전'을 부른 다음 김지연의 '찬 바람이 불면'을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2010년대 중반부터 소처럼 일한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활동량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힘들기로 유명한 일일드라마를 방송사를 교대해가며 연속 출연하고 있다.

3. 주요 출연작

3.1. 방송

3.2. 드라마

4. 홍보대사

5. 수상

6. 기타

7. 비판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이 진행되던 시기 KBS 파업을 지지하며 하차한 후배 아나운서 출신 정은아가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대체 진행자로 투입되었는데, 단순한 땜빵 진행이 아니라 아예 프로그램 이름까지 바꿔서 진행하는 거라 논란이 일었다. 이에 파업에 참가한 선후배 아나운서들은 물론 청취자들로부터도 상당히 비판을 받았고,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일명 KBS새노조) 소속 아나운서들은 성명서에서 후배 아나운서의 용기 있는 결정으로 잠시 비워 둔 자리를 다른 누구도 아닌 한솥밥을 먹었던 전직 선배 아나운서가 넙죽 받는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결정인지 묻고 싶다고 그녀의 행보를 꼬집었다. 결국 진행을 맡은지 2개월만인 2017년 11월 10일까지만 진행하고 자리에서 물러났고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유지철 아나운서가 진행했다. 원래 진행자였던 정은아는 하차한지 5개월만인 2018년 2월에 복귀했으며 같은해 5월 25일까지 진행했다.

당시 오영실은 대체진행을 맡기 직전에 출연한 TV CHOSUN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KBS를 그만둔 이유가 당시 근무하던 중견 아나운서 10명이 단체로 지방발령을 받았고 권고사직이 있었던 것이라며 자신이 그때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어서, 당시의 행동과 배치되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본인은 90년대초 방송민주화 장기 파업 이후 뒷수습 이면을 지켜본 이후로는 "방송 펑크가 나면 무조건 달려가 메꿔라"고 선배들에게 배운 초심으로 돌아가 방송 고유의 목적외엔 어떤 의미도 부여하고싶지않다고 말했다.

파업시 비조합원이나 퇴사자, 프리랜서 등 외부 대체 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파업을 무력화키므로) 불법이다. 대체인력으로 들어간 사람이 단지 도덕적 비난만 받을 일이 아니다. MBC 파업시 대체 진행으로 들어갔던 김성주도 같은 비난을 받고 있는데,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불법 대체 인력 투입으로 사측이나 해당 연예인이 처벌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6]


[1] 1964년 음력 12월 28일. [2] 인터넷에서 "오영실집사"라고 검색하면 간증 영상이 많이 보인다. [3] 군번 129720 [4] KBS 아동 프로그램 TV 유치원의 8대 하나 언니로도 출연했다. [5] 대선배 10명이 단체로 지방 발령이 나자 전문직으로서의 의문이 생겼고, 연기자의 꿈을 키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6] 이는 파업 종료시 상호 손배소, 고소고발을 모두 취하하는 것으로 합의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타결시 상호 고소 취하"라는 것이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므로, 파업시 사측에서 노조(조합원)에 손배소가 가능하다는 점과 함께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문제는 파업, 협상이 장기화될 경우에, 타껄까지 대체인력 투입이 계속 이루어져도 못 막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