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캐릭터의 모티브인 실존인물에 대한 내용은 김홍집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처음에는 이형의 언급으로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본래 이형은 청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하는 동안 일본으로 갈 조선통신사로 그를 염두에 뒀지만, 아직 조정에 출사하지 못한 것을 두고 아쉬워한다.2. 행적
그러다가 훗날 제2차 조청전쟁 직전에 조선이 본격적으로 근대화를 시작할 때 처음으로 직접 등장하게 된다. 이때 김홍집을 대표로 한 성균관 유생들 12명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어윤중을 대표로 한 지방 유생 28명이 프랑스로 유학갔다. 그리고 이형이 직접 그들을 마중나가 독려해주자 의지를 불태운다.현대사에도 나름 능력있는 인재로 알려진 인물로 박규수도 총리란 직책에도 불구하고 일개 부품에 불과하다고 자신의 후계로 김홍집을 꼽았다. 그러나 김홍집은 영국 유학 이후로 영국을 이상의 국가로 생각하며 너무나 친영파적 성격이 강해져서[1] 여차하면 매국노가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한다. 박규수는 김홍집을 자신이 잘 가르쳐서 단순히 고종의 부품이 아닌 제대로 된 신하이자 관료가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영국이 동아시아 전체의 공적이 되면서 김홍집을 비롯한 친영파는 죄다 숨죽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종교의 자유 선포를 계기로 유림들이 저러다 사고치는 거 아니냔 투로 내각 총리대신인 박규수에게 걱정을 토로하다가 "그들이 국가에 올바르게 기여하도록 지도하는 게 너를 비롯한 유학파 관료들이 해야 할 일이다."라는 조언을 듣는 등 그의 후계자가 될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러전쟁 시기에 이형이 친정을 간 동안 국내정치에서 조선애국당이란 단체의 등장을 경계한다. 이 시기에 밝혀진 그의 직책은 교육부 차관보인데, 1872년에 전쟁이 끝나고 이제 겨우 1873년이 됐을 최근 회차를 고려하면, 해외 유학을 다녀왔다고 해도 고속승진 그 자체.[2]
한편, 본인은 모르는 듯하지만 스승격인 내각 총리대신 박규수의 추천 덕분에 황태자의 교육을 담당할 태자태사로 낙점되면서 입지가 더 단단해질 듯하다.
이후, 귀국한 박규수 총리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이형을 알현하여 자신이 지향하는 교육정책의 목표와 목적을 최대한 소신껏 밝히면서 이형을 흡족케 하여 태자의 교육을 담당할 태자태사 역할을 부여 받는다. 또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전제군주인 이형 앞에서 그것을 밝히는 이상주의적인 모습과, 동시에 아직 백성들의 교육 수준이 낮아서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모습을 함께 보여주기도 하였다.
[1]
이건 박규수가 아직 사농공상 시대의 사상을 못 버린 것도 있다. "우매한 백성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같은 혼잣말을 중얼거릴 정도니 말이다.
[2]
1873년 기준으로 32세밖에 안 된 그가 현대 대한민국으로 치면 벌써
1급 이상의 고위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