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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47a0> 호적명 | 김천익 (金天益) |
출생 | 1890년 4월 1일 |
평안남도 평원군 서해면 용산리 | |
사망 | 1921년 7월 11일(향년 31세) |
상훈 | 건국훈장 독립장 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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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2. 생애
1890년 평안남도 평원 에서 김병두(金炳斗)의 맏아들로 태어났다.1912년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건너가 1914년 봉천성(奉天省) 통화현(通化縣)의 군무교련소(軍務敎鍊所)에 들어가 교육을 받는 한편 1916년까지 부민단[1][2] 검찰원으로 복무하였다.
1919년 신흥무관학교의 속성과(군사과)를 졸업한 후 홍범도가 창설한 대한독립군에 가담하여 집안현(輯安縣)[3] 본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조선혁명당의 정사로 활동하던 중 1921년 7월 봉천성 유하현(柳河縣)[4] 삼원보(三源浦)에서 유하현 파출소의 일본경찰 다마이(玉井)에게 연행되는 김련(金連), 차병조(車秉曺), 강진상(姜鎭祥) 등을 구출하기 위해 차용륙(車用陸)과 함께 매복하던 중 행인의 밀고로 출동한 일본 경찰과 교전 중에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