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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호(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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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서울 잠실 재혼 40대 가장 일가족 4명 살해[왕종명].mp4_000070514.png
이름 김중호
출생 1957년
가족 배우자, 슬하 1남 2녀
죄명 살인
처벌 사형(형집행 무기한대기)
수감처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살인범. 2001년 발생한 잠실 아파트 일가족 살인사건의 범인이다.

2. 생애

1989년 9월, 개인택시를 몰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김중호의 집안에선 애딸린 여자와 결혼하는 걸 반대했지만, 그것을 무릅쓰고 결혼했다. 그렇게 의붓딸이 생겼고, 90년과 92년 딸과 아들을 각각 얻었다. 하지만 그가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면서 가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단란주점 등에서 주방일을 하는 아내의 귀가가 늦을 때마다 “바람을 피우는 것 아니냐”며 때리는 등 폭행이 잦았다. 그리고 1995년부터 부인에게 쌓인 불만을 애꿏은 의붓딸에게 화풀이 하듯이 성추행하기 시작했다. 의붓딸이 자는 방에 몰래 들어가 "다 컸다"며 몸을 만지는 일이 잦았으며 1999년부터는 친딸인 둘째 딸도 성추행하기 시작했다. 2001년 고등학생이 된 큰 딸이 엄마에게 그의 성추행 사실을 털어놨다. 단란주점 주방일, 요구르트 배달 등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있던 부인은 이 사실에 격분해 남편을 성추행과 가정폭력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결국 아내를 향한 폭력과 딸에게 저지른 성추행으로 인해 2001년 9월에 고소 당한 것이다. 그는 9월 22일 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및 상습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되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11월 30일 구치소를 나왔다. 경찰들에게 진술할땐 "딸들을 성추행한 적이 없으며 바람을 피던 아내가 나를 무고해 구속됐었다"고 주장했다. 구치소에서 나온지 열흘 뒤인 12월 12일 밤 11시, 그는 처음으로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 아내를 대면했다. 그의 유일한 전재산인 택시를 가압류 했기 때문에 이혼만은 막아야 했다. 그렇게 빌기도 하고 그러다가 서로간에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잠에서 깬 의붓딸도 "엄마 때리지 말라"며 그를 집 밖으로 몰아내려고 했다. 이때 순간적으로 그는 안방 침대 밑에 있던 공구함으로 달려가 쇠망치를 꺼내와 부인의 머리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이미 쓰러졌진 이후에도 이마, 정수리 할 것 없이 10번이나 내리쳤다.

의붓딸은 김의 목을 두 팔로 휘감아 대롱대롱 매달리며 말리려고 애썼지만, 오히려 그의 분노를 자극해 더 잔혹하게 살해당했다.[1]

부인과 의붓딸을 살해한 이후 초등학교 5학년 딸과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자고 있는 안방으로 향했다. 자살을 결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남은 두 아이들이 고아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해를 마음먹은 것이다. 결국 그는 작은 딸에게 망치의 나무자루가 부러질 정도로 망치를 휘둘렀고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 소형절단기와 가위를 이용해 작은 딸을 살해했으며 아들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그리고 그는 둘째 딸과 막내아들은 안방 침대에, 부인은 부엌에서 그리고 큰딸은 작은 방에 엎드려 숨진 상태로 놔두고 집을 나왔다.

이후 택시를 타고 분당을 돌아다니다가 새벽 경기도 분당의 한 상가 앞에서 배와 손목 등을 소형 절단기로 자해한 채로 발견돼 병원에서 긴급 봉합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입원 수술을 받아야했고 그러기 위해선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데 당연히 가족과는 연락이 안 됐다. 병원에서는 가족을 찾아달라고 전화 서울 송파구 잠실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다. 이후 경찰들이 김중호가 거주하는 아파트로 가서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고 문도 안 열리자 119 구조대에 요청하여 베란다 창문을 통해 집안에 들어갔으며 김중호의 아내와 두 딸, 아들이 모두 잔인하게 살해된 상태였고 그의 범행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는 병원에서 자백을하며 부인이 아이들만 데리고 따로 살겠다면서 계속 이혼을 요구해 홧김에 일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후 법원은 “범행의 죄질과 범정의 극악함”을 들어 사형을 선고했지만 그는 심신장애를 주장하며 항소하였다. 그러나 항소가 기각되며 2003년 사형이 확정되었다.


[1] 얼굴을 집중적으로 때려서 발견 당시 너무 뭉개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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