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7-13 00:05:32

김준(1582)

김준
金浚
<colbgcolor=#94153e'><colcolor=#ffc224,#db9e00> 출생 1582년
전라도 고부군
(現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사망 1627년 (향년 45세)
평안도 안주목(現 평안남도 안주시)
징언(澄彦)
시호 장무(壯武)
본관 언양 김씨
부모 부친 - 김광필(金匡弼)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조선의 무신.

2. 생애

1586년 태어났으며 김취려의 14대손이다. 처음엔 문관을 꿈꾸며 학문을 익혔으나 이후 무관의 꿈을 꾸며 무예를 연마했다.1605년 무과에 급제해 부장을 거쳐 선전관이 되고, 이어 교동현감을 지냈다.

다시 선전관에 임명되었으나, 광해군의 실정에 실망하여 고향인 고부로 내려가 10년간 두문불출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도총부도사가 되고, 죽산부사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이괄의 난 당시 후영장으로 임진강 상류에 있는 영평산성을 지켰으며, 난이 평정된 뒤에는 의주부윤, 훈련원정, 봉산군수를 역임하였다. 1625년 통정대부로 승진하여 안주목사 겸 방어사가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 평안병사 남이흥과 함께 안주성을 방어했다. 하지만 이틀만에 함락되자 활을 쏘며 최후의 저항을 했지만 화살이 떨어지자 남이흥과 함께 화약고에 불을 질러 자폭했다. 거주하고 있던 가족들도 대부분 몰살되었다.[1] 전후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고향인 고부의 정충사, 안주의 충민사에 제향되었다.


[1] 넷째 아들만 살아남아 대가 끊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