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함경북도 농성에서 때어났으며 1.4후퇴 때 월남한 뒤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잡지 '개척', '부부'에서 기자로 활동하였고 1956년 시집 '능금' 출간을 계기로 등단하였다. 그렇게 한국시인협회 창립 회원으로 월간 '자유문학' 편집장을 거쳐 한국문인협회 부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과 고문, 명예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1977년 한국문학상, 1989년 한국예술문화상 대상, 1992년 서울시문화상을 각각 수상했다. 또한 미국에 거주하던 시기 시집 '아 아메리카, 그 이름이 미국'과 소설집 '화려한 상봉'을 동시에 펴내기도 했다. 그리고 말년에 이르러서는 평창군 용평면 재산리에 거주하며 시작(詩作) 활동과 후진양성에 힘써왔다. 그곳에 ‘공심산방(空心山房)’을 짓고, 자신의 호를 딴 하서문학회를 만들어 ‘하서문학’을 펴냈다. 이후 2020년 시업의 중단을 선언하면서 1.4후퇴때 헤어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마지막 시집인 어머니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