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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16 01:37:36

김성민(1931)

<colbgcolor=#000><colcolor=#fff> 김성민
파일:교육인 김성민.jpg
출생 1931년
전라북도 정읍시
사망 2023년 10월 21일 (향년 93세)
직업 교육인
유담 (裕潭)
학력 중동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학사)
경력 성한학원 이사장
서경대학원 이사장
가족 배우자 문명숙, 슬하 1남 김범준, 1녀 김현정

1. 개요2. 생애3.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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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교육인.

2. 생애

그는 1931년 정읍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70년대초 서울 무교동에 극장직 맥주홀 올림피아와 빅토리아를 차려 큰 돈을 벌었다. 당시 그는 이 맥주홀외에 살롱과 여관도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공장, 여관 등등을 인수해서 사업의 다각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이렇게 돈을 모아 1972년 9월 폐교 직전이던 경일고등학교를 인수했다. 이후 1973년 3월 대일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그로부터 10년도 채 안된 1981년 대일고는 서울 지역에서 서울대에 최대 합격자(79명)를 내며 신흥 명문고로 급부상했다. 대일고등학교가 명문고로 자리를 잡자 그는 자신의 학원 확장에 나섰다. 1980년대초 은주여중과 정릉여상을 인수하고 이어 1984년 대일외국어학교를 개교했다. 1987년에는 서경대학교를 인수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정릉 산기슭에 중-고-대학이 어우러진 2만 5천여평 규모의 학원을 설립하였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그는 1975년 5월 공납금 유용과 탈세혐의로 구속돼 1년여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재단 이사장직을 장모 김영순에게 넘기고 자신은 학원장이란 자리를 새로 만들어 앉았다. 1981년 2월 당시 대일고 교감 민병찬이 말썽교사들을 인사 조치하라는 재단측의 요구에 항의해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일어나자 그는 학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1985년엔 대일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의 내신성적을 조작해 말썽이 되기도 했다. 그는 1992년에는 학교법인 서경대학원 설립 이사장에 취임해 2023년까지 이사장으로 재임했다. 그리고 수백억원에 이르는 서경대 인수자금이 같은 재단으로 성적미달자에게 1,000만원 이상의 뇌물을 받고 입학시켜주는 입학 부정을 통해 이루어졌음이 드러나기도 하였다.

3. 사망

2023년 10월 21일 사망했다. 향년 9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