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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4 21:06:16

길재경



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외교관.

2. 생애

1924년생으로 오랫동안 알려져있으나 나중에 북한 측의 묘비 공개로 인하여 1934년 10월 18일생임이 밝혀졌다.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이후 한동안 역사학부장으로 일하다가 1961년 외무성 국장이 되면서 외교관의 커리어를 밟았다.

1974년 3월, 북한이 북유럽과의 외교관계를 적극 강화함에 따라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과 동시에 모두 수교하게 되었고 초대 스웨덴 대사로 겸임, 아이슬란드 및 노르웨이 대사를 겸하게 되었다. 하지만 스웨덴 대사관에서 마약밀수사건을 하다가 추방당하는 외교적 개망신을 저지르는데, 김정일에게 바칠 자금을 구하느라 그렇게 된거라고 귀국 후에 오히려 정무원 외교부 부부장으로 승진하는 북한의 막장 인선이 드러난다.

귀국 후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 국제부 아프리카 담당 부부장에 임명되었으며 김정일 서기실 부부장에 임명되어 김정일의 최측근으로 등극한다. 1982년 4월, 김일성 칠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1983년 3월, 감옥에서 풀려난 신상옥이 최은희와 재회한 연회장에서 길재경도 보았는데, 그가 마약 밀수하다가 추방당한 뉴스를 본 기억이 나서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한번 더 봤다고. 그리고 연회 참석자 중에서 춤을 제일 잘 추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1988년 3월, 조선로동당 6기 13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하였다. 1988년 5월, 조선로동당 대표단장으로 콩고, 자이르를 방문했으며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91년 10월, 조선로동당 대표단장으로 아프리카를 순방했으며 1992년 2월에도 짐바브웨를 방문했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을 지냈다.

후지모토 겐지 증언에 따르면 90년대 후반부터 길재경은 동유럽을 돌면서 위조달러를 진짜달러로 교환하는 사업을 했으며 1998년 4월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대사관 리문무 참사관이라는 가짜 신분을 이용해 3만 달러의 위조지폐를 달러로 환전하다가 잡히는 바람에 추방당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암으로 죽었다는 풍문이 전해졌지만 이를 검증하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2003년, 연합뉴스발로 그가 미국에 망명했다는 특종이 터져나와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그와 함께 망명했다고 지목된 한명철 조광무역 부사장은 낭설이며 길재경은 이미 애국렬사릉에 묻혀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중앙일보 정창현 기자가 남북역사학자 공동학술토론회를 취재하러 가서 애국렬사릉 사진을 찍었을 때 길재경의 무덤 사진도 찍은 것이 데스크에서 확인됨으로 황당한 오보로 드러났다. 공식적인 기일은 2000년 6월 7일이다. 하지만 부고 발표 등이 이뤄지지 않은 것을 보아서는 말년에는 실수로 인해 김정일에게 좀 찍혀 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길재경 사망설에 대해서는 남한의 왈가왈부에 대개 무시하는 북한이 평소와는 달리 조선중앙통신사 명의의 논평을 내놓아서 신이 나서 비난해댔다.
최근 남조선CBS방송은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을 인용하면서 우리의 <서기실 부부장 길재경이 다른 2명과 함께 제3국을 통해 미국으로 망명하였다>는 허튼 보도를 내보냈다. 방송은 또한 < 염기순 1부부장의 아들 염진철도 제3국 출장중 망명했다>고 떠들어 댔다. 이것은 전혀 근거 없는 새빨간 거짓말로서 반공화국모략에 이골이 난 자들이 꾸며 낸 또 하나의 황당한 날조극에 지나지 않는다. 길재경부부장으로 말하면 그는 2000년 6월에 병으로 사망한 후 현재 평양 신미리애국렬사릉에 안치되여 있다. 거짓말도 분수가 있고 정도가 있어야지 사망한 그의 시신이 어떻게 살아서 대양건너 머나먼 미국땅으로 망명해 갔단말인가. 모략군들은 신미리애국렬사릉에 와서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면 저들의 모략선전이 얼마나 비렬하고 황당무계한 특대형날조품이였는가를 알고 얼굴을 붉힐것이다.
2003년 5월 19일자 조선중앙통신 론평

북한에선 남한에서 오보낸 것이 신이 났는지 10년도 넘게 지난 2015년 7월 8일자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서도 길재경 망명설을 남한의 대표적 개소리로 소개하면서 조롱한 바가 있다.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위암으로 죽었으며, 죽기 직전 병문안을 간 후지모토에게 그가 사실 후지모토의 감시역이였으며 자기 때문에 후지모토가 가택연금을 당했었던 것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고 한다. 애국렬사릉에는 당중앙위원회 부부장 직함으로 안장되어 있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