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통신 Goldstar Telecommunic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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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 금성통신(金星通信) 주식회사 |
영문명칭 | Goldstar Telecommunication Co., Ltd. |
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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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일 | 1969년 10월 25일 |
해산일 | 1995년 1월 1일 |
업종명 | 통신 및 방송 장비 제조업 |
상장유무 | 상장폐지 |
상장시장 | 유가증권시장 (1974년 ~ 1995년) |
종목코드 | 006270 (보통주) / 006275 (우선주) |
법인형태 | 피합병법인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128 (여의도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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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옛 LG 계열 통신기기 제조사다. 지금의 LG전자, 에릭슨-LG, 한국하니웰, 씨브이네트 등의 전신으로도 볼 수 있다.2. 역사
▲ 1982년 기업홍보영상.
▲ 1982년 광고.
LG의 통신부문 역사는 1961년, 금성사가 국내 최초로 자동전화기를 개발한 데서 기인한다. 이듬해엔 국내 최초로 전화교환기를 만들고 1964년에 첫 EMD식 자동전화교환기를 만든 후, 1967년에는 조직 개편에 따라 통신사업부가 생겼다. 1969년에는 '금성통신'으로 분사하고 1970년 서독 지멘스 사 및 일본 후지전기와 합작했으며, 전기부문을 빼서 ' 금성전기'를 세웠다. 1971년에 부산 온천동공장 생산라인을 안양공장으로 옮기고 '금성통신전기'로 사명을 바꾼 뒤, 1974년에 외국인 합작기업으로서 처음으로 기업공개를 단행하고 후지전기와도 결별한 뒤, 사명도 원래대로 돌려놨다. 같은 해 계전기 사업을 ' 금성계전'으로, 통신공사업을 ' 금성통신공사'로 각각 분사시켰다. 1976년에는 연구소를 세우고 구 체신부 배구단 선수진을 인수하여 남자 실업배구단을 창단했으며, 한도공업의 경영권도 인수했다.
1979년 필리핀에 통신플랜트를 수출하고 1981년에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를 만들었고, 1982년에는 실업배구단을 금성사로 넘겼다. 1984년 미국에 첫 해외법인을 세우고 의료기기 판매사업을 '금성의료기'로 분사시키고, 1987년에는 금성전기로부터 TAD, C/T, L/F 사업을 넘겨받으며 가정자동화 시스템과 도로교통 관제시스템을 각각 자체 개발했고, 자동화사업 전반을 금성산전으로 넘겼다.
같은 해 PBX 연구부문을 금성반도체로 넘긴 뒤 1988년 태국 스리타이와 합작해 현지법인 'SGS(Srithai Gold Star)'를 세우고, 국내 최초로 비디오 폰(정지화상전화기)을 개발했다. 1991년에는 세계에서 3번째로 ODD를 독자 개발한 뒤, 금성전기를 합병했다.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일반건전지 겸용 휴대전화기를 개발했다. 같은 해 지멘스 측과 합작관계를 청산하고 안양공장을 산업중기계부품상협동조합에 팔았다.[2] 1995년에는 LG전자와 합병하여 역사에서 사라졌다.
3. 역대 임원
3.1. 금성사 통신사업부장
- 윤욱현 (1967~1969)
3.2. 금성통신
- 회장
- 구자경 (1975~1987)
- 대표이사 회장
- 구인회 (1969)
- 구자경 (1970~1971)
- 부회장
- 구자학 (1987~1989)
- 대표이사 사장
- 구정회 (1969~1970)
- 윤욱현 (1970~1978)
- 구두회 (1978~1982)
- 이재연 (1982~1987)
- 임종염 (1987~1990)
- 김용선 (1990)
- 백중영 (1990~1992)
- 오세희 (1992~1995)
- 대표이사 수석부사장
- 하인리히 바싸탈 (1971~1976)
- 수석부사장
- 하인츠 디터 케루트 (1976~1994)
- 부사장
- 구자학 (1970~1971)
- 구자두 (1971~1974)
- 에케할드 사이델 (1975~1978)
- 안동렬 (1976~1980)
- 구자원 (1978~1979)
- 클라우스 바이치 (1978~1980)
- 심흥주 (1980~1982)
- 롤프 칼 트라우트만 (1981~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