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금종헌(琴鍾憲)·금종응(琴鍾應)·금석조(琴錫祚) |
자 / 호 | 경석(景石) / 운초(雲樵) |
본관 | 봉화 금씨[1] |
출생 | 1857년 5월 29일 |
경상도
봉화현 서면 문촌리 (현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문촌리)[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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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20년 8월 20일 |
경상북도 봉화군 | |
묘소 |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운계2리 괘별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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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금석주는 1857년 5월 29일 경상도 봉화현 서면 문촌리(현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문촌리)에서 아버지 금기만(琴基萬)과 어머니 의성 김씨 김백규(金百圭)의 딸 사이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1896년 봉화에서 의병을 일으켜 봉화·예안·영주·순흥·풍기·안동의 의진과 공동작전을 펴 일본군에 대항했다. 특히 유인석 의병장의 소토장(召討將)으로 있으면서, 1896년 음력 6월 12일 낭천(狼川)전투에서 전사한 서상렬의 부대와 제휴했고, 7대 의진의 회맹(會盟)을 성립시키고, 여러 차례에 걸쳐 일군과 교전하여 큰 공을 세웠다. 유인석이 만주로 망명할 때는 따라가지 않고 봉화군에 은거했고, 1920년 8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금석주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