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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lling Stones 1964 |
The Rolling Stones No. 2 1965 |
Out of Our Heads 1965 |
Aftermath 1966 |
Between the Buttons 19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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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 1967 |
Beggars Banquet 1968 |
Let It Bleed 1969 |
Sticky Fingers 1971 |
Exile on Main St. 19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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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ats Head Soup 19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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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링 스톤이 2015년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송라이터를 선정한 순위다.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밥 딜런 | 폴 매카트니 | 존 레논 | 척 베리 | 스모키 로빈슨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믹 재거 & 키스 리처즈 ( 재거-리처즈) | 캐롤 킹 & 제리 고핀 | 폴 사이먼 | 조니 미첼 | 스티비 원더 | |||||
11위부터는 문서 참조. | |||||||||
같이 보기: 명반, 명곡, 앨범 커버, 아티스트, 송라이터, 기타리스트, 보컬리스트 1 / 2, 베이시스트, 드러머, 듀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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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gger -
Richards 재거-리처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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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믹 재거, 키스 리처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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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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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e6001d> 1965년, 밴드 초창기의 사진. | 1978년, 전성기 시절의 사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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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e6001d> 최근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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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세
단순히 콤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비틀즈의 레논-매카트니처럼 밴드 내에서 작곡을 하는 조합으로, 레논-매카트니, 플랜트-페이지와 함께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작곡 콤비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70년대 중후반 들어서는 글리머 트윈스(Glimer Twins)라는 가명으로 프로듀싱까지 하게 되었다.레논-매카트니가 그러했듯 믹과 키스의 관계도 애증으로 묘사되곤 한다. 두 사람은 밴드 결성 초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보낸 둘도 없는 친구지만 서로 디스하고 헐뜯기도 했으며,[1] 끊임없이 마약이나 스캔들에 연루되곤 했다.
많은 작곡 콤비가 그렇듯이, 이 둘도 음악적 성향은 많이 다르다. 둘 다 로큰롤을 기반으로 했지만, 믹 재거는 당대 팝 음악의 트렌드에 상당히 민감하고, 그 시대에 따라 하드 록, 디스코, 뉴 웨이브, 얼터너티브 록까지 수많은 장르를 포용하려 한다, 반면에 키스 리처즈는 고전적인 정통 로큰롤, 블루스를 추구한다.[2] 이 둘의 상반되는 스타일이 서로 맞물리며 롤링 스톤즈의 수많은 걸작이 탄생했지만, 동시에 이로 인한 대립 역시 커리어 내내 계속되었다. 특히 1980년대에 접어들어 뉴웨이브, 신시사이저를 받아들이려는 믹 재거와 그에 부정적이던 키스 리처즈간의 갈등이 폭발했고, 밴드 또한 음악적으로 방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의 갈등은 1989년 Steel Wheels에 이르러서야 봉합되었고, 이후로는 큰 다툼 없이 꾸준히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다. 믹 재거 역시 노년기에 접어든 21세기 이후로는 이전처럼 트렌디함에 집착하지 않고 고전적인 블루스 록으로 회귀하고 있다.
3. 역사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는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고 유치원 동창이기도 했다. 그리고 성장하며 각자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어 잠시 헤어졌다가[3][4],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되었을 때 기차역 앞에서 다시 만나 친분을 쌓게 되었다. 롤링 스톤스가 결성되었을 초기에는 리더 브라이언 존스를 주축으로 고전 블루스를 리메이크하는데 중점을 두어 자작곡의 비중은 별로 없었지만, 1965년 키스 리처즈가 작곡한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재거-리처드를 주축으로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하게 되었고 Aftermath부터는 전 앨범을 자작곡으로 채우기 시작했다.4. 여담
- 이 둘은 유명한 생존왕이기도 한데, 믹 재거는 락스타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문란한 여성편력을 가졌으나 온갖 성병에 용케 안 걸리고 현재까지 살아남았고, 키스 리처즈는 락스타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 극심한 골초+약쟁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암, 마약 중독으로 인한 사망 등의 건강문제가 일절 없다.[5][6] 지금까지 이런 건강에 위험한 생활로 인해 죽은 락스타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이런 생활의 최고봉인 재거와 리처즈가 팔순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정정한 것을 보는 많은 팬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는 둘다 [age(1943-07-26)]세로 고령이다.
- 믹 재거의 옛 연인이었던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증언에 따르면 믹 재거가 키스 리처즈를 바라보는 시선은 거의 연인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만큼 그 둘의 사이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절친했다는 것으로 보인다.
[1]
갈등은 주로
1980년대에 이루어졌다. 트렌디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믹 재거와, 정통 로큰롤 지향적인
키스 리처즈가 전에 블루스 지향적인
브라이언 존스와 신경전을 벌였듯이 싸운 것. 하지만 똑같은 갈등을 이전에 겪었던
비틀즈와는 다르게, 크나큰 동요 없이 잘 넘어갔고 이후
롤링 스톤즈는 영국, 아니 세계를 대표하는 최장수 밴드가 되었다.
[2]
이러한 성향 차이는 둘의 솔로 앨범들을 비교해보면 보다 확연하게 드러난다.
[3]
여담이지만 이 둘의 성장환경은 거의 정반대 수준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확연히 다른데, 믹이 중산층 계급 출신으로 성장하며 더 좋은 동네로 이사를 간 것과는 달리, 키스는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집안사정이 안좋아지자 오히려 원래 사는 곳보다 더 좋지 못한 동네로 이사를 갔다. 더구나 믹은 장남이였기에 가족들의 기대가 컸고, 그 기대에 부응해 영국의 명문대 중 하나인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우등생 겸 모범생이였지만, 키스는 또래보다 늦자란 체구 탓에 따돌림의 대상이 되어 원만한 교우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채 동네에 하나쯤은 있는 그저 그런 예술 대학으로 진학한다.
[4]
하지만 기차역에서 재회할때까지 한번도 만나지 못한건 아니었다. 믹이 학생시절 용돈벌이로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을때, 키스가 믹에게서 아이스크림을 사간 적이 있었다고.
[5]
오히려 담배는 키스 리처즈와 비슷한 수준으로 피워댔다지만, 마약은 덜한
같은 밴드의 드러머인 찰리 와츠가 후두암에 걸렸다. 게다가 1964년 결혼한 아내와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잘 지낸, 바람둥이인
믹 재거와는 정반대로 정조를 잘 지킨 인물이다. 팔순에 가까운 고령의 나이인지라, 팬들이 걱정하는 상황. 이후 2021년 8월 24일 영원한 잠에 들었다.
[6]
2006년, 어느날 약에 취한 키스가 피지에서 야자수에 오르다 떨어져 병원에 실려간 일이 있는데, 그 사건을 바라본 사람들이 '세상에 키스가 헤로인이 아니라 피를 흘렸다더라!'란 우스갯소리가 나왔었다. 나름 큰 사고였고 뇌진탕이 있긴 했지만 키스는 그 사건 후로도 멀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