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8cdaf><colcolor=#000> 글로스터의 윌리엄 공자 Prince William of Glouces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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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윌리엄 헨리 앤드루 프레더릭 (William Henry Andrew Frederick) |
출생 |
1941년
12월 18일 하트퍼드셔 바닛 하들리 커먼 |
사망 |
1972년
8월 28일 (향년 30세) 스태퍼드셔 하프페니 그린 |
학력 |
이튼 칼리지 케임브리지 대학교 모들린 컬리지 |
아버지 |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 |
어머니 | 레이디 앨리스 몬터규 더글러스 스콧 |
형제 | 남동생 리처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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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왕손.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의 맏이이다.2. 작위
- 글로스터의 윌리엄 공자 전하 His Royal Highness Prince William of Gloucester (1941년 12월 18일 ~ 1972년 8월 28일)
3. 생애
1941년 12월 18일,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와 글로스터 공작부인 앨리스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왕위계승서열은 사촌누나 엘리자베스 공주와 마거릿 공주, 아버지 헨리 왕자에 이어 4위였다.출생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었고, 아버지 헨리 왕자는 군 복무 중이었다. 큰아버지 조지 6세는 윌리엄의 어머니인 글로스터 공작부인 앨리스에게 편지를 보내 "만약 헨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이 윌리엄의 후견인이 되어주겠다"라고 약속했다.
1942년 2월 22일, 윈저 성의 개인 예배당에서 성공회 유아세례를 받았다. 대부모는 큰아버지 조지 6세와 할머니 메리 왕대비, 6촌 헬레나 빅토리아 공녀[1], 외숙모 마거릿 호킨스, 외삼촌 윌리엄 몬태규 더글라스 스캇이었다. 당시 전쟁 도중이었기 때문에 언론에는 세례식 장소가 알려지지 않았으며, 단순히 '시골의 개인 예배당'에서 거행되었다고 발표했다.
1947년 11월 20일, 엘리자베스 공주와 필립 마운트배튼의 결혼식에서 화동을 맡았다.
어린 시절에는 노샘프턴셔의 개인 별장에서 자랐으며, 1945년에 아버지 헨리 왕자가 호주 총독으로 임명되자 2년간 캔버라에서 거주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웰즐리 하우스 스쿨과 이튼 칼리지를 다녔다.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교 모들린 컬리지로 진학해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정치학과 미국 역사, 경영학을 전공했다.
학업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 상업은행인 라자즈(Lazards)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65년에는 영연방 사무국에 입사해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으며, 나이지리아 라고스 고등판무관실에 파견되어 3등 서기관으로 근무했다. 1968년부터는 도쿄의 주일 영국 대사관에서 2등 서기관으로 근무했다.
1970년, 아버지 헨리 왕자가 뇌졸중을 겪은 후 건강이 악화되자 외교관 생활을 접고 영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후 왕실의 일원으로서 공무에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여왕을 대신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통가를 방문했다. 국립 스키 연맹 후원자 협회와 모들린 협회, 이스트 미들랜드 관광 협회, 왕립 아프리카 협회 등 주요 단체의 대표자를 맡았으며, 왕립 인류학 연구소와 영국 학교 연구 협회, 철도 보존 협회의 후원자를 맡았다. 엘리자베스 2세가 해외 순방으로 자리를 비울 때는 섭정으로 임명되어 여왕의 업무를 대행하기도 했다.[2]
그러나 1972년 8월 28일, 스태퍼드셔 하프페니 그린에서 열린 항공기 경주 대회에 참석했다가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해 30세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당시 아버지 헨리 왕자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어머니 앨리스는 아들의 죽음을 말할지 말지 망설이다 말을 안했지만 아마 그가 뉴스 소식을 통해 알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졌으며, 시신은 프로그모어의 왕립 묘지에 묻혔다. 이후 글로스터 공작위는 1974년에 동생 리처드가 물려받았다.
4. 가족관계
4.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글로스터의 윌리엄 공자 (Prince William of Glouces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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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 (Prince Henry, Duke of Glouces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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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5세 (George 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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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7세 (Edward V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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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 (Princess Alexandra of Denm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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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의 공녀 메리 (Princess Mary of Te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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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 공작 프란츠 (Francis, Duke of Te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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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의 메리 애들레이드 공녀 (Princess Mary Adelaide of Cambrid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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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몬태규 더글라스 스캇 (Lady Alice Montagu Douglas Scot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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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버클루 공작 존 몬태규 더글라스 스캇 (John Montagu Douglas Scott, 7th Duke of Buccleu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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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버클루 공작 윌리엄 몬태규 더글라스 스캇 (William Montagu Douglas Scott, 6th Duke of Buccleu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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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자 해밀튼 (Lady Louisa Hamilt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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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브리지먼 (Lady Margaret Bridgem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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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브래드퍼드 백작 조지 브리지먼 (George Bridgeman, 4th Earl of Bradfor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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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 럼리 ( Lady Ida Lumley) |
5. 여담
- 영국 왕실 최초의 비행기 조종사였다.
- 글로스터 공작 가문이 조지 6세 일가와 가장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윌리엄 공자도 사촌누나 엘리자베스 2세 부부와 친했다. 부모님인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와 글로스터 공작부인 앨리스 왕자비가 만혼으로 낳은 늦둥이였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와는 열다섯 살이나 차이가 났고[3], 오히려 5촌 조카인 찰스 왕세자와 더 가까운 동년배였기 때문에 찰스와 자주 어울려 놀았다고 한다.
- 생전 전직 모델 겸 스튜디어스인 수자나 스타클로프(Zsuzsi Starkloff)와 연인 관계였다. 두 사람은 진지한 관계였으나, 수자나는 이미 두 번의 이혼 경력에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까지 있었다. 때문에 왕실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를 허락해 주지 않았으며[4] 결국 두 사람은 1971년에 헤어졌다.
- 생전에 포피리아 환자였다고 한다.
[1]
영국의 헬레나 공주의 장녀
[2]
당시 윌리엄의 왕위 계승 서열은 9위였으나,
엘리자베스 2세와
마거릿 공주 슬하의 자녀들이 아직 어린 나이였고, 아버지
헨리 왕자는 건강이 악화되어 섭정으로서의 직무 수행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계승 서열이 낮은 윌리엄까지 섭정으로 임명되는 일이 생겼다.
[3]
엘리자베스 2세 역시 고모
메리 공주의 두 아들
조지와 제럴드를 제외하면 사촌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4]
다만 사촌누나
마거릿 공주는 윌리엄에게 "조금 기다리면서 지켜보자"라고 말하며 두 사람의 관계에 암묵적인 지지를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