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권태철(權泰哲) |
생몰 | 1897년 7월 12일 ~ ? |
출생지 | 경기도 강화군 선원면 연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권태철은 1879년 7월 12일 경기도 강화군 선원면 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8일 유희철(劉熙哲)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해 '조선독립'이라 쓴 큰 깃발을 들고 시장을 한 바퀴 돌며 군청방면으로 진출했다. 이때 만세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달려온 강화경찰서 순사보 김덕찬(金德贊)이 권태철이 들고 있는 큰 종이 기를 뺏으려하자, 권태철은 오른손으로 기를 잡고 왼손으로 김덕찬의 뺨을 때렸다. 또 군중들은 김덕찬에게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라’고 하였으나 그가 거절하자 군중들은 김덕찬을 발로 차는 등 폭행을 가하였다.이후 5,000~6,000명의 시위군중들이 군청 앞에서 3시간 동안 독립연설회와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오후 5시경 경찰서를 포위하고 억류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일본 경찰은 시위대의 위세에 굴복하여 유희철·장상용(張相用)·조기신(趙基信)을 석방하였다. 시위군중들은 밤 8시 30분 경찰서 앞에서 일시 해산하였다가 재차 시장에 모여 늦은 밤까지 만세를 외친 뒤 자진 해산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권태철은 1919년 12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0년 3월 22일 출옥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권태철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