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 권승환(權昇煥)·권이엽(權二葉)·대삼학(大森學) |
자 | 여용(汝用) |
본관 | 안동 권씨[1] |
출생 | 1911년 |
경상북도
안동군 내성면 유곡리 (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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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34년 3월 17일[3] |
도쿄 이치가야형무소 |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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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권영섭은 1911년 경상북도 안동군 내성면(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에서 아버지 권상영(權相英)과 어머니 의성 김씨 김종림(金鍾林)의 딸 사이의 3형제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그는 1925년 7월 26일 경상북도 봉화청년회 제14회 정기총회에서 서기에 임명되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1931년 8월 전협일본출판노동조합(全協日本出版勞動組合)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2년 5월에는 일본공산청년동맹에 가입하고 성서지구 소속으로 배달반에서 세포(細胞) 조직의 확립에 힘썼다. 특히 도쿄 니혼바시와 교바시(京橋) 양 지국의 책임자로 활약하면서 기관지 『무청(無靑)』을 배포하는 등 반제항일(反帝抗日)운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에는 일본공산당 기관지 배포조직인 '적기의 벗(赤旗の友)'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했다. 1월 도쿄 교바시에 거주 중 도쿄 경시청 특고경찰(特高警察)에 체포되었다. 2월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도쿄지방검사국에 송치되었고, 1934년 3월 17일 도쿄 이치가야(市谷)형무소에서 예심 진행 중 순국하였다. 형무소 측에서 화장한 유해는 1934년 3월 28일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4월 3일 자택에서 장례식에 치러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권영섭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