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2-05-20 15:57:38

권상학

파일:권상학.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야스나가 소쓰루(安永相鶴)
안쓰이 소쓰루(安水相鶴)
본관 안동 권씨[1]
출생 1908년 2월 5일
경상북도 안동군 부내면 법상동
(현 경상북도 안동시 법상동)[2]
사망 1955년 6월 25일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08년 2월 5일 경상북도 안동군 부내면 법상동(현 안동시 법상동)에서 아버지 권영우(權寧禹, 1890 ~ 1927. 9. 5)와 어머니 안동 김씨(1886 ~ 1928. 7. 8)[3] 사이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25년 4월 안동청년회에서 조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27년에 고향 안동군 지역에 안동청년동맹회와 신간회 안동지부가 창설되자 이에 가입하였다. 그 뒤 1930년 10월 6일 동지들과 협의하여 「피로서 자유를 얻는다」「버려야 할 것은 철쇄이고 얻어야 할 것은 자유이다」「전쟁은 우리들의 살길이다」 등의 문구를 기재한 벽보를 안동청년동맹회관의 벽에 붙여 민족의식 고취를 꾀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0년 11월 1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공소하였으나, 12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같은 혐의에 대해 공소이유없음으로 기각되었고, 결국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33년 12월 2일 동아일보 안동지국 기자 임명되었다. 중간에 휴직 또는 사직을 했었는지 1934년 7월 20일에도 안동지국 기자에 재차 임명되었다.

그 뒤 1955년 6월 25일 별세했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1] 동정공파(同正公派) 조균(兆均)계 35세 오(五) 항렬이나 항렬자를 쓰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 권영우는 34세 영(寧) 항렬을 썼다. [2] 인근의 노하동·동부동·서부동·신세동·안막동·용상동·율세동과 함께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3] 김광호(金光湖)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