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 찬옥(璨玉) / 소봉(小峯) |
본관 | 능성 구씨[1] |
출생 | 1890년 1월 27일 |
경상도 대구도호부 동하면 서변동 (현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무태마을)[2] |
|
사망 | 1910년 5월 13일 |
한성부 경성감옥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구찬회는 1890년 1월 27일 경상도 대구도호부 동하면 서변동(현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무태마을)에서 아버지 구재서(具在書)와 어머니 인천 채씨 채석범(蔡錫範)의 딸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좌정승파 파조이자 좌정승에 추증된[3] 송은 구홍(松隱 具鴻)의 19대손이며, 서변동 입향조이자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한 구회신(具懷愼)의 11대손이었다.어려서 집안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15세였던 1906년 3월 신학문을 학습하기 위해 배재학당에 입학하였다. 그 직후 융희학교로 전학하였는데, 이때 학우들을 규합하여 척왜비사(斥倭祕社)라는 비밀단체를 조직하고 구국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1907년 4월 안창호· 양기탁· 전덕기 등을 중심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로서 신민회가 창립되자 이에 최연소 회원으로서 가입하여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만주에서 활약하고 있는 비밀리에 독립투사로부터 국내동포에게 보내는 포고문과 기타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인쇄물을 받아 국내 유지들에게 살포하고 자신이 자필로 이를 베껴 써서 배포하다가 필적이 탄로나 그해 12월에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일제로부터 배후인물을 대라는 잔혹한 고문을 받았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악형을 받다가 1910년 5월 13일, 20세의 나이에 한성부 경성감옥에서 순국하였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며, 이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