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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9:03:50

구승우

<colcolor=#fff><colbgcolor=#0047a0> 형오(亨五)
족보명 구태우(具台祐)
본관 능성 구씨
출생 1863년 5월 18일
전라남도 화순
사망 1917년 12월 30일
전라남도 해남군
묘소 전라남도 화순군
상훈 건국포장

1. 생애2. 주요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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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전라남도 화순(和順)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인 구승우(具丞祐)는 아버지 구교심(具敎潯)과 광주 노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2. 주요 활동

유림 대표였던 구승우는 일제의 을사조약 강제 체결에 항의, 봉기한 끝에 1907년 양회일을 주축으로 화순군(和順郡) 이양면(梨陽面) 일대에 설치되었던 쌍산의소(雙山義所)에 참여하였다. 그는 창의(倡義) 때 군량미 여러 석을 의진에 제공하였으며 병서에 지식이 깊어 의진의 전략 구축과 군사들의 전술 훈련에도 관여하였다.

구승우는 또한 스스로 화약을 제조하기도 했으며 2백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각 지역의 일본군 분견소를 공격해 전깃줄을 끊거나 총기와 총탄을 빼앗는 등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며 의병활동을 주도했다. 쌍산의소와 그의 행적은 '행사실기(杏史實記)', '습재실기(習齋實記)', '임전일록(臨戰日錄)' 등에 기록으로 남았다.

그러나 의병 부대가 도마치(刀摩峙)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체포된 의병장 양회일이 1908년에 장흥형무소에서 순국하자 의병은 해산을 맞이했다. 그 후 구승우는 해남의 산중으로 은신하여 수년간 서당 훈장으로서 학동들을 교육했다.

1917년 작고한 구승우에게는 2004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출처1:공훈전자사료관
참고출처2:동아일보
항일의병기념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