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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23:01:47

구미에



1. 개요2. 상세3. 제2차 세계 대전4.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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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Goumier

과거 프랑스군이 운용하던 식민지인 부대. 영국군 구르카가 있었다면, 프랑스군에는 구미에가 있었다.

2. 상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Goumier001.jpg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자유 프랑스군 소속 구미에 병사. 군용대검을 숫돌에 갈고 있다.
모로코 아틀라스 산맥에서 살던 산악 지대 주민들로 구성되었다. 출신지가 모로코이니만큼 당연하게도 이슬람 신자였으며 구르카와 스위스 용병처럼 거친 산악 지대로 인한 호전적인 기질과 뛰어난 등반 능력, 우월한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이름의 뜻은 "부족민"으로 모로코를 식민지로 삼은 프랑스가 1908년 몇몇 부족(Goum)을 치안 유지에 동원하면서 등장하였다. 이때는 여러 부족 출신자로 부대를 만들었는데, 결집해 반항하는 일을 막고 좀 더 잘 통제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후 이들은 식민지 방위용 비정규군의 성격을 띄게 된다.

이들은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인도차이나 전쟁에 투입되어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나 1956년 4월 7일, 모로코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3.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구미에는 자유 프랑스 편으로 싸웠다. 이탈리아군과 독일군 모두 구미에를 두려워했는데 튀니지에서는 미군 제9보병사단이 구미에를 앞세워 오고 있다는 말을 들은 이탈리아군 세 개 중대가 그대로 항복한 적도 있었다. 이들과 근접전을 겪어본 나치 독일군 병사가 "구미에란 그 괴물들을 상대하느니 차라리 영국군 대포 공격을 하루종일 받는게 훨씬 마음이 편할 정도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시기 구미에는 165명의 식민지인과 6명의 (대부분 프랑스인인) 부사관, 1명의 프랑스인 장교로 구성되는 굼(Goum)이라는 제대를 구성했다. 굼은 중대에 해당되었으며 세 개 소총소대와 지원소대 하나로 구성되었다. 또한 그런 굼 넷이 모여 대대에 해당되는 타보르(Tabor)라는 제대를 구성하였다. 타보르 셋이 모여 메할라(Mehalla)라는 제대를 구성하는 일도 있었지만 보통은 타보르나 굼이 보병사단에 소속되어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자유 프랑스군은 본토가 독일의 꼭두각시인 상황이라 미국의 군복, 장비, 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구미에는 이로부터 약간 자유로웠다. 많은 구미에 병사들은 군복 대신 젤라바(Djellaba)라는 이름의 후드 달린 로브를 입고 군화 대신 샌들을 신었으며 위 사진처럼 철모를 쓰고 다니는 일은 드물었다. 전령이나 정찰 임무를 맡는 기마병들은 군마대신 자신들이 기르던 말을 타고 다녔다. 먹을 수 있는 것에 제약이 있는 이슬람을 믿기에 스팸이나 C 레이션을 먹는 대신 데리고 다니는 양들을 잡아먹었다. 하지만 스프링필드 M1903 소총이나 스텐 기관단총, 윌리스 MB과 같은 장비들은 제공받아 사용했다. 미군의 M1910 군장을 두르고 M1917A1 브로디 철모[1]를 쓰기도 했다.

이들은 아틀라스 산맥이나 아펜니노 산맥과 같은 험악한 산지에서는 큰 효율을 발휘했지만 중화기가 부족하였기에 전차와 포병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했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영-미 정규군이 알제리로 보내지는 사이 독일군이 대규모 공격을 해서 정찰중이던 구미에가 핵심 지역을 지키기 위해 투입된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든 독일군을 지연시키기는 했지만 전차와 포병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구미에는 북아프리카 전역, 이탈리아 전선, 서부전선의 남프랑스 부분에서 싸웠다. 이 중 이탈리아 전선의 몬테카시노 전투에서는 전투 종료 후 구미에 병사들이 마로키나테(Marocchinate, 모로코인의 행위)라고 불리는 대규모 학살, 강간 및 약탈 행위를 벌여서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건 구미에들만의 잘못은 아닌 것이 약탈은 자유 프랑스군 사령관 알퐁스 피에르 쥐앙(Alphonse Pierre Juin)이 전투에 참전하고 이긴 댓가로 약속한 것이라 더 문제였다. 쥐앙은 구미에들에게 수고했고 약속대로 이겼으니 50시간동안 마음껏 하라고 허용해 구미에들은 약탈에 학살, 방화, 강간을 마음껏 벌였던 것. 때문에 구미에보단 이걸 약속하고 허용한 프랑스 측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현재 프랑스는 사건 자체는 부정하지 않으나 전쟁범죄는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즉 사건의 책임을 인정하지는 않겠다는 것. https://www.youtube.com/watch?v=xuLoAjJwCxo

이러한 흑역사가 쌓인 덕분에, 참전했으면서도 이들은 적절한 연금과 보상을 받지 못하였으며 모로코가 독립한 이후에는 그들에 대한 언급 자체가 거의 되지 않고 있다. 따로 특별한 종족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원래 베르베르 인들 중 산악에 살던 사람들이 이곳에 뽑혀 갔기 때문에 다른 베르베르족들에 다시 섞여 들어간 것으로 보여진다.

4. 참고 자료


[1] M1 철모로 대체되기 이전에 미군이 사용하던 1차대전 스타일의 철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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