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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 관성대제(關聖大帝) | |
생몰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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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의 인물이자 관우의 아버지로 관심의 아들, 광소왕의 손자다.2. 생애
자는 도원(道遠)으로 생전 성품이 지극하여 부친 관심이 사망하자 3년상을 치렀다고 한다. 3년상이 끝나갈 무렵인 160년 6월 24일 관우를 낳았다. 1725년, 청나라의 옹정제가 관의를 관우의 성고(聖考)로써 성충공(成忠公)으로 추존하였다. 이후 1855년, 함풍제가 관의를 비롯한 관우의 3대조를 왕으로 추존하여 성충왕(成忠王)이 되었다.민간설화에서는 탐관오리를 죽이고 도망자 신세가 된 아들 관우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아내와 함께 우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오늘날 관우의 고향에서는 우물이 있었다는 자리에 관의 부부를 기리기 위한 '조택탑'이 세워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