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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9:40

관우(후한)

貫友
(? ~ 96년)

후한의 인물.

거연도위(居延都尉)를 지냈으며, 93년에 교위였던 섭상(聶尙)이 죄에 연루되어 면직되자 후임으로 교위가 되었다.

관우는  미당(迷唐)[1]을 덕과 감화로 다스리기 어렵다고 생각했으며,[2] 미당이 반란을 일으키자 역사(譯使)를 보내서 여러 종족을 이간질시키고 재화로 유인해 모두 사이가 멀어지게 했다.

이 틈에 관우가 군대를 보내 변경 밖으로 나가 대유곡과 소유곡에서 미당을 공격해 800명을 참수하거나 포로로 잡았고, 보리 수만 곡(斛)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봉류대하(逢留大河)를 끼고 성(城)과 오(塢)를 쌓고, 큰 배와 다리를 만들어 군대를 건너가게 한 뒤 미당을 치려고 하였다. 그러자 미당은 부락을 이끌고 먼 곳에 있는 사지하곡(賜支河曲)에 의지하며 살게 되었다. 

96년에 병으로 사망했고, 한양(漢陽)태수를 지냈던 사충(史充)이 후임으로 교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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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시대 곽회에게 격파된 강족의 수령 미당(迷當)과는 동명이인. 이름의 한자는 다르다. [2] 전임자였던 섭상은 다른 전임자들이 미당을 공격했음에도 이기지 못한 것을 보고 덕과 감화로 다스리려 했으나, 미당은 이를 배반하여 섭상이 파견한 역사(譯使)들을 찢어죽이고 다시 노략질을 일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