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空島政策조선 태종 시기 도서 지역에 거주하던 주민들을 본토로 이주시킨 정책.
2. 상세
1400년 조선의 제3대 왕으로 즉위한 태종은 조선의 중앙집권제를 강화하고, 세수를 확보하면서 왜구의 약탈에 도서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1417년에 공도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 공도 정책으로 인해 울릉도와 남부 도서 지역의 거주민들이 대거 본토로 이주하게 되었다. 물론 조선에서도 도서 지역들을 완전히 방치한 건 아니라서 정기적으로 시찰하여 도망간 범죄자가 있으면 잡아들이고 왜구가 있으면 토벌하였다.공도 정책은 임진왜란 이후 완화되기 시작하여 점차 주민들이 섬으로 돌아와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1882년 고종 때가 돼서야 공도정책은 공식적으로 완전히 폐지되었다.
3. 평가
조선 초기 중앙집권화를 강화해 왕권이 강해질 수 있었던 정책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하지만 태종 이방원의 공도 정책은 울릉도와 같은 주요 도서에 군대를 상시 주둔하지 않았고, 조선 수군의 요식행위에 가까운 시찰로 거의 방치하는 상태인데다, 보완책도 거의 마련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 영유권 시비를 걸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는 비판이 있다.
또한 공도 정책으로 주민들이 바다에 나가는 것이 금지되면서 결과적으로 조선의 해양 역량이 고려시대보다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해 조선판 해금령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무조건 섬에 사람이 거주를 못하게 하는 공도 정책의 시행이 태종 이방원의 오점이라고 할수 있다.
최근에는 전남 신안군의 악명 높은 치안 불안 문제 때문에 공도 정책을 재평가하는 인터넷 게시글도 나왔다. #
4. 기타
5. 관련문서
[1]
영도구는 절영도의 전체에 속해있는 구다. 때문에 당연히 공도 정책이 시행되자 무인도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