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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03:49:14

경주 원성왕릉 석상 및 석주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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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릉 서역인 무인상 2점의 모습. 사진 출처 : YTN - '우락부락한 얼굴' 경주 괘릉 이국적 석상의 모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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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릉 사자상 중 1점의 모습. 사진 출처 : 경주문화관광 홈페이지 - 경주 원성왕릉(괘릉)

1. 개요2. 내용3. 이와 비슷한 유물들4. 외부 링크5. 보물 제1427호

1. 개요

慶州 元聖王陵 石像 및 石柱 一括. 8세기~9세기경 통일신라 시대에 신라 제38대 국왕 원성왕 왕릉 괘릉을 조성하며 함께 만들어 배치한 석조상 10점. 현재 원성왕릉(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산 17, 611-4)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427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서역인 무인상 높이 257cm 등.
사자상 높이 131.5~140cm 등.

대한민국 사적 제26호 경주 원성왕릉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는 8세기~9세기경 신라의 석조물 10점이다. 거대한 봉분 앞에 석인상(石人像), 석사자상, 석주(石柱)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수량은 문인상·무인상 4점, 사자상 4점, 석주 2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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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황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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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뉴스1 - “실크로드 통해 신라와 페르시아 직접 교류했다”, 경북일보 - [이상문의 페르시안 나이트] ˝신라 처용설화는 페르시아 `쿠쉬나메`의 아브틴 왕자 이야기˝

이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당시 신라를 방문한 서역인을 모델로 제작된 무인상으로 페르시아 서라벌을 잇는 동서문화의 교류적 측면에서 크게 중시되고 있는 자료이다. 통일신라시대 절정기의 사실적인 조각인 성덕왕릉 석인상을 계승하여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된 상으로 당시 석조공예술을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이 무인상들은 큰 눈이 움푹 들어가게 표현하고, 그 아래로 큰 코와 두꺼운 입술, 덥수룩한 턱수염을 나타내었다. 머리에는 터번과 비슷한 창이 없는 모자를 쓰고 있다. 한 손은 주먹을 불끈 쥐고 들고 있으며, 다른 한 손은 옆구리에 붙여 긴 칼을 들고 있어 약간 기우뚱하게 서있다. 두 팔에는 근육이 표현되어 있어 육중한 무게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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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동아일보 -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3>페르시아인들 경주를 활보하다

지금으로부터 1,200년~1,3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의 석조상 10점으로, 8~9세기 당시 한국의 국제 교류 활동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문화재이다. 이에 2005년 1월 22일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3. 이와 비슷한 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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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경주 용강동 문인 토용

경주 용강동 돌방무덤에서 출토된 7세기~8세기 경 서역인 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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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역사기행] 폴로스틱을 든 서역인의 정체

경주 구정동 방형무덤에서 출토된 6세기~7세기 경 서역인 무인상과 사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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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조선일보 - 6세기 경 터번 두른 土偶 나와… 중앙亞 소그드人인가, 오피니언 : 6세기 신라, 서역과 통하다…월성에 이란인 얼굴

경주 월성 해자에서 발굴된 5세기~6세기 경 고신라시대의 터번 쓴 서역인 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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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우리역사넷 - 황금의 나라와 유토피아, 신라

중국 당나라 신라 사신도에 그려진 신라사신 1인과 그의 옆에 찰싹 붙어있는 서역인의 모습.

4. 외부 링크

5. 보물 제1427호

사적 제26호 경주 원성왕릉을 중심으로 좌·우 입구에 한 쌍씩 석조상들이 배치 되어 있으며 수량은 문·무인 4점, 사자상 4점, 석주 2점으로 총 10점이다.

무인상은 서역인 또는 서역풍을 나타내고 있어서 동서문화의 교류적 측면에서 크게 중시되고 있는 자료이며, 통일신라시대 절정기의 사실적인 조각인 성덕대왕 능 석인상을 계승하여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된 상이다.

또한 이들 문·무인상들은 흥덕대왕 능의 석상들보다 앞선 생동감을 갖고 있고 역동적인 사실성을 나타낸 대표적인 조각품으로 신라 조각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8세기의 이상적 사실 조각과 함께 당대의 찬란한 신라 문화의 진수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