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경주시 노서동 214-3번지에 위치한 노서동 138호분에서 발견된 7세기 통일신라시대 초기 금제 귀걸이 일괄.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2. 내용
1953년 6월 25일부터 7월 6일까지 김원용이 1차 발굴한 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경주 노서동 138호분에서 출토된 7세기 경 신라시대 금귀걸이들이다. 노서동 138호분은 흔치 않은 신라의 굴식 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 축조 시기가 7세기 중엽 쯤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이 유물들도 대략 7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량의 경우 정확히 몇 개가 발굴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꽤 많은 수가 발굴된 것으로 보인다.
노서동 138호 고분은 경주 중심지 고분군의 서북단에 자리잡은 노서동(路西洞) 고분군의 일원으로, 노서동 137호분인 쌍상총, 노서동 133호분인 마총, 노서동 139호분인 은령총, 노서동 140호분인 호우총 등과 인접해 있다. 특히 근처에 있는 쌍상총과 마총이 둘 다 7세기 중엽 경에 건설된 굴식 돌방무덤이므로, 같은 무덤 양식을 하고 있는 노서동 138호분 역시 비슷한 시기에 함께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굴식 돌방무덤은 고구려, 백제 등에서 일찍부터 유행한 묘제로, 이 양식을 적용한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구려의 강서 고분 · 무용총 · 쌍용총, 백제의 무령왕릉 · 송산리 고분군 · 능산리 고분군이 있다. 반면에 신라의 고분들은 대부분 돌무지덧널무덤 형식으로 축조되었으며, 굴식 돌방무덤 형태는 삼국통일이 완료된 통일신라 이후에야 간헐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이 굴식 돌방무덤 양식의 경우 사람이 사는 집처럼 방과 문이 있어서 그냥 문 열고 들어갔다 나오면 되는 구조라 도굴에 매우 취약하다. 실제로 현재까지 전해내려오는 고구려, 백제계 무덤들은 무령왕릉 하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무덤들이 얄짤없이 도굴당해 텅텅 빈 상황이다. 이는 신라 또한 마찬가지라 굴식 돌방무덤으로 조성된 쌍상총과 마총 또한 싸그리 털려나가 쌍상총에서는 인화문토기편(印花文土器片)을 비롯한 약간의 토기편만 출토되었고 마총은 아예 출토 유물이 전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굴식 돌방무덤인 노서동 138호분이 도굴되지 않은 것은 충분히 무령왕릉의 사례와도 비교할 수 있을 만큼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발굴 당시 노서동 138호분에서는 경주 노서동 138호분 금반지를 비롯한 금제 귀고리, 은반지, 금․은팔찌, 은제 과대(銀製 銙帶 : 은으로 만든 혁대), 은제 요패(銀製 腰佩 : 은으로 만든 띠드리개) 등의 수많은 장신구와 함께 청동제 용기, 각종 토기, 칠기 제품 등의 용기류와 철모 4개, 철촉 1개 등 무기류, 마구(馬具 : 말에 사용하는 기구) 및 각종 철기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 전 신라에서 만들어진 금귀걸이들로,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1955년 경주 노서리 쌍상총, 마총, 138호분의 3개 고분에 대한 발굴 보고가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 <고적 2> 경주 노서리 쌍상총 마총 138호분. 이때 금귀걸이들이 1차 발굴되었고 이후 1964년에 다시 한번 무더기로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