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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03 19:49:22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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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물 寶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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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1.jpg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4. 보물 제666호

1. 개요

慶州 南山 三陵溪 石造如來坐像. 8세기 ~ 9세기 경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의 삼릉계곡에서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 석조 불상.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72-6에 소재 중이며, 대한민국 보물 제666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파일: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3.jpg

불상 높이 142㎝, 대좌 높이 96.7㎝, 총 높이 2.38m.

경주 삼릉계곡의 삼릉계 제6사지에 위치한 8세기~9세기 경 통일신라 시대의 석조 불상으로,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어졌다.
파일: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4.jpg
1910년 경의 모습[1] (1차 복원 전). 사진 출처

정확히 언제 이렇게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 때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에 이미 불상이 크게 손상되어 있었다. 광배의 경우 크게 파손되어 윗부분이 3분의 1 정도 결실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몸통 또한 우측이 상당 부분 파손되었고 얼굴 또한 코 밑에서 턱까지 완전히 박살이 난 채로 참수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차원에서 유학자들이 불상을 끌어낸 후 목을 치는 일이 다반했는데 이 불상 역시 그때 변을 당했던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파일: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5.jpg
파일: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6.jpg
1920년 경의 모습 (1차 복원 후). 2차 복원 전.

이후 일제에 의해 주변에 흩어져 있던 광배 파편과 불두를 모아 접합시켜 복원된다. 당시 복원 직후의 사진을 보면 광배의 상단부가 조각나 드문드문 붙여져 있고, 불두의 하관 부분이 아예 망실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후 1970년대 이전 누군가 이 신라시대 불상을 복구를 하려고 했는데 굉장히 엉성하게 작업을 해 버렸다.[2] 턱 부분을 대충 시멘트로 발라 머리 윗부분과 몸체를 이었고, 기존에 대좌 위에 올려놓았던 광배도 조각내 불상 뒤의 축대를 쌓는 데 썼는데 차라리 손보지 않음만 못한 수준이 되어 남산의 훌륭한 불상에 먹칠을 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잘못 복원된 상태로 방치되던 중, 1999년 들어 경주시에서 남산 종합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이 불상의 재복원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후 2006년 열암곡 석불좌상 등과 함께 복원이 확정되었고, 2007년 주변의 발굴조사와 함께 불상의 해체가 시작되어 2008년 불상의 2차 복원이 완료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없어진 광배 윗 부분을 복원했고, 불두의 하관 역시 통일신라 시대의 다른 불상을 참고해 새로 조각하여 현재 상태가 되었다.[3]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어 석가불로 추정되며,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아래의 연화대좌는 크게 상·중·하대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대석은 넓직한 1장의 자연석이며, 상면 중앙에 8각의 각형 2단굄을 장식하고 중대석을 떠받쳤다. 중대석은 8각이며, 각 면에 안상(眼象)이 음각되어 있고, 상대석은 연화좌로서 8각의 각형 1단 받침을 갖추었다. 각 연판 안에 꽃무늬를 다시 장식하여 화사하게 처리하였으며, 연화대좌 위에는 광배가 꽂혀 있다. 광배는 통일신라 시기 흔히 제작되던 주형거신광[4]으로, 머리 부분의 두광과 몸 부분의 신광이 화염문·초엽문 등으로 꾸며져 있다.

이 불상은 머리와 몸을 따로 조각하고 이후 합치는 방식인 별조(別造)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2007년 해체조사 때 발견된 사실인데, 두 개의 돌을 사용하여 머리와 몸을 따로 만들고 홈을 파 철 막대를 박아 서로 연결한 것이다. 이 방식은 통일신라시대 이후 조각된 석조 불상에서 종종 보이는 방식으로, 이렇게 제작된 불상들은 대부분 머리가 유실되어 있거나 후대에 접합한 경우가 많다.

파일: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2.jpg

환조(丸彫)에 가까울 만큼 양감을 강조한 이 불상은, 같은 장소에서 발견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약사여래좌상과 양식이 비슷하지만, 힘이 줄어든 옷주름 선, 섬세하고 미려한 장식적인 무늬의 광배와 대좌 등을 통해 볼때 그보다는 좀 더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불상의 제작 연대는 8세기 ~ 9세기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200~1,300여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의 석조 불상으로, 신라인들의 불교문화 및 석조공예술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며, 또한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이 처했던 문화재 수난사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이에 1980년 6월 11일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보물 제666호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있는 이 석조여래좌상으로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자리잡고 있다. 얼굴은 원만하고 둥글며, 두 귀는 짧게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의 옷주름선은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허리는 가늘고 앉은 자세는 안정감이 있다. 대좌(臺座)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었는데, 상대에는 화려한 연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8각 중대석은 각 면에 간략하게 눈모양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하대는 단순한 8각대석으로 되어 있다.

8각의 연화대좌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안상을 비롯하여 당당하고 안정된 자세 등으로 보아 8∼9세기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1]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사진이다. [2] 민간의 비전문가가 임의로 복원한 것으로 추정되며, 기도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대강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 말고도 민간에 의해 잘못 복원된 불상들이 여럿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3] 불두의 복원은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안계리 석조석가여래좌상, 장항리 석조여래입상, 경주박물관 소장 용장계 석불좌상, 영지 석불좌상 등을 참고했다. [4] 舟形擧身光, 서양배 모양의 전신을 감싸는 광배